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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러시아 귀속 여부에 대한 크림자치공화국 주민들의 투표에서 절대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는 결과가 나오자 친(親) 러시아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
<러시아 크림 병합 1년> 주민투표에서 동부 내전까지
96% 이상 지지로 러'에 귀속…동부 분리주의 부추겨 내전 지속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내 자치공화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크림은 수도 키예프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뒤이은 정권 교체 혁명으로 친서방 세력이 권력을 잡은 직후인 지난해 3월 주민투표를 해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고 러시아 정부는 크림의 병합 요청을 신속히 받아들였다.
지난해 3월 16일 러시아 군인들이 대규모로 진주한 크림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중앙 정부에서 권력을 잡은 친서방 세력이 러시아계 크림 주민들을 탄압할 것이란 불안감과 러시아 귀속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83%가 넘는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몰렸다.
이튿날 크림 선관위가 발표한 개표 결과 크림 공화국에선 96.77%, 별도의 투표가 실시된 세바스토폴 특별시에선 95.6%가 러시아 귀속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같은 투표 결과를 토대로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는 지난해 3월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연방과 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뒤이어 러시아 하원이 20일, 상원이 그 다음 날 병합 조약을 비준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1일 병합 문서에 최종 서명함으로써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는 각각 러시아 연방의 84번째와 85번째 구성원이 됐다.
소련 시절이던 1954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던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60년 만에 크림이 러시아로 되돌아온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 지역의 접점에 있는 탓에 수백 년에 걸쳐 훈족, 그리스, 비잔틴 제국, 몽골 제국 등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지배를 받아오던 크림은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처음으로 러시아 제국에 병합됐다.
이후 줄곧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던 크림반도는 19세기 중반(1853~1856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충돌로 빚어진 '크림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당시 남하 정책을 펴고 있던 러시아 제국과 이를 저지하려던 오스만 제국 및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전쟁이었다.
러시아에서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선 뒤인 1921년 크림반도에도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 산하 크림 자치소비에트공화국이 설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던 크림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자치공화국 지위를 박탈당하고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 산하의 1개 주(州)로 들어간다.
그러다 1954년 크림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 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해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에 속했던 크림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에 양도한 것이다.
17세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카자크 족이 러시아 제국에 복속을 요청한 페레야슬라프 조약 체결(1654년) 300주년을 기념한 친선의 표시였다. 당시만 해도 소련에 함께 속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소련 붕괴 이후 크림을 두고 다툼을 벌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결정이었다.
소련이 붕괴의 길로 치닫던 1991년 2월 크림 주는 전체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 자치소비에트공화국의 부활을 결정했고 소련 붕괴 후인 1992년 2월 크림 의회는 크림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크림 공화국은 그해 5월 독립국 지위를 규정한 헌법까지 채택했으나 러시아의 중재하에 결국 우크라이나 내의 자치공화국으로 남게 된다.
크림 문제는 지난 2013년 말부터 불거진 우크라이나 내 친러-친서방 세력 간 정치 투쟁의 결과 친서방 진영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또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200만명 주민의 절반 이상(60%)이 러시아인으로 친러 성향이 강한 크림 자치공화국이 친서방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우크라이나 이탈과 러시아 귀속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크림 공화국과 러시아가 일사천리로 병합 절차를 추진하면서 크림은 결국 60년 만에 러시아로 되돌아가게 됐다.
러시아의 크림 병합에 대해 서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 질서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흐루시초프의 변덕으로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잡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여러 차례에 걸쳐 대러 제재를 하며 크림 병합을 단죄했지만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크림의 러시아 귀속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등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부추겨 반군의 독립 투쟁을 촉발시켰고 이후 반군과 이들을 진압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내전 양상으로 확산했다.
약 6천명의 인명을 앗아간 양측의 무력 충돌은 휴전과 교전 재개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은 각각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을 지원하며 '제2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달 12일 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등 4개국 정상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회동해 정부군과 반군 간의 제2차 휴전 협정을 성사시키면서 협상 국면으로 접어든 상태다.
하지만 협정에서 합의한 중화기 철수와 반군 장악 동부 지역에 대한 자치권 부여 문제 등에 대한 이견이 계속되면서 휴전 무산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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