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도교육청 예산 다툼에 학교 보건안전 후퇴
"아이 아프면 어쩌라고"…보건교사 없는 학교 늘어나
경기교육청, 누리과정 32억원 때문에 보건교사 줄여
중앙정부-도교육청 예산 다툼에 학교 보건안전 후퇴
(가평·파주=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 경기도 가평에 거주하는 권모(45·여)씨는 며칠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자녀를 어쩔 수 없이 결석시켜야 했다.
아이가 아파서였는데 결석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권씨는 아이가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해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고 아이의 뜻에 따라 학교에 데리고 갔다.
그러나 학교 측은 난감해하며 자녀를 다시 데려갈 것을 원했다. 아이를 돌봐줄 보건교사가 없어 대처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 학교 측의 이유였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에는 보건교사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았다.
권씨는 "앞으로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고민스러워했다.
권씨는 이어 "시골 소규모 학교라 아이가 아프면 바로 달려올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다"며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아이가 아프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사진DB) 초중고 보건교사들이 적십자사에서 응급처치법을 교육받고 있다.
학교 측도 보건교사가 없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해까지 보건교사가 있다가 올해 배치되지 않은 파주 파양초등학교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응급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부모에게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의료 전문가인 보건교사가 없다 보니 응급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학교보건법상 학교마다 1명씩 보건교사를 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기지역 초·중·고 2천310개 학교 중 보건 교사가 배치된 곳은 2천89곳이다.
1천578개 교에는 중앙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511개 학교엔 도교육청 자체 예산에서 기간제교사로 보건교사를 배치했다.
보건 교사가 없는 곳이 221개 학교에 달했다. 예산이 부족해서라는 것이 경기도교육청의 설명이다.
올해엔 보건교사 없는 학교가 285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있던 보건교사가 올해 사라진 학교는 경기 북부에 20곳, 경기도 전체로는 64곳이나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강조되는 추세이지만 학교의 응급상황 대처 능력은 더 나빠진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청은 올해 보건교사 채용 예산 중 32억원을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을 메우는데 편성, 그만큼 보건교사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24일 밝혔다.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 교육청에 떠넘기는 바람에 그렇다는 것이 도교육청 입장이다.
도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보건교사 배치에 필요한 예산의 60∼70%만 지원하는 것이 문제"라며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는 그만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정부에 예산 편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의 예산 다툼에 학교 보건안전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2009년 '초,중,고 보건교사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방지 긴급 연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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