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중국시장> ②중소기업, 내수시장서 활로 찾아야
(칭다오=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한국인 사장이 또 야반도주했어요". 중국 내 한국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있는 산둥성 칭다오(靑島)의 주칭다오총영사관 앞에서는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의 항의가 종종 일어난다.
또한 중국인 근로자들이 체납 임금을 받으려고 한국인 관리자를 감금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칭다오에서는 한국 기업이 이처럼 정식 청산 절차도 밟지 않고 잠적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 줄어드는 추세지만 중국에서 찬밥 신세가 된 한국 중소기업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칭다오에 진출했던 중소기업들은 봉제, 의류, 주얼리, 공예품, 가방 등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 주를 이뤘으나 각종 세제 혜택이 사라지고 인건비가 폭등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청산하려고 해도 기업 소득세 등 각종 면세 또는 감세 혜택을 받았던 비용을 토해내야 한다. 청산 절차만 1~2년이 걸려 한국 중소기업으로선 야반도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칭다오 청양구의 한 공예품업체 사장은 "인건비 경쟁력으로 운영하던 업종은 다 폐업 위기에 처했고 대부분 공장을 라오스나 베트남으로 이전하거나 사업을 정리했다"면서 "정식으로 청산을 하려고 하면 엄청난 벌금을 물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한국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2006년 1만여개에 이르던 산둥성 내 한국기업은 2010년 6천226개, 2012년 5천814개, 2013년 4천743개로 감소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외국인 투자 유치 촉진을 위한 각종 혜택을 완전히 폐지하면서 비교 우위를 상실한 상태다.
1994년 부가가치세 우대 폐지를 시작으로 2007년 내·외자 기업 소득세 단일화를 거쳐 2010년 외자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전면 폐지됐고 2011년 말에는 외국인 사회보험 면제 혜택마저 사라졌다.
이런 상황 속에 최근 5년간 인건비는 두 배 상승했다. 산둥성 최저 임금 인상률은 2012년 13%, 2013년 11.1%, 2014년 12%로 5년 연속 급등했다. 2014년 최저 임금은 1천500위안(한화 25만원)이다. 그러나 실제 칭다오 지역 한국 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천위안(53만원)이며 그나마도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내륙 개발에 중점을 두면서 내륙에서 도시에 일하러 나왔던 농민공들이 다시 대거 고향으로 돌아가 인력난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한국 중소기업체가 밀집한 칭다오 청양구도 인력 구하기 전쟁 중이다.
코트라 칭다오무역관 관계자는 "각종 사회보험 비용까지 감안하면 한국 기업이 중국인 근로자 1명에게 월급으로 6천~7천위안의 비용을 쓰는 상황이라 인건비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2002년 칭다오에 진출한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 우주전자(칭다오UJ유한공사)의 이중수 총경리는 "대개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업체와 똑같은 가격에 기술력만 조금 앞서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중국 업체보다 가격도 낮고 기술력도 더 좋아야 사업을 할 수 있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우주전자는 지난해 초에 2천명에 달했던 칭다오 공장 내 중국인 직원들을 800여명으로 줄이고 공장 기계화를 단행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박용민 칭다오 코트라무역관 관장은 "중국 정부의 각종 혜택이 사라지면서 산둥성서 매년 400여개의 한국기업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임가공 중심이던 한국 기업의 투자가 유통, 무역회사로 바뀌었고 중소 제조업체들은 없어지거나 미얀마 등으로 옮기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산둥성 한국 중소기업들은 현지에 진출한 현대 위아, LG 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의 협력사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1990년대 한중 수교 직후 초창기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했던 톈진(天津)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텐진에 진출한 한국 업체는 1천800여개며 이 가운데 10개 중 2개는 투자 실패 등으로 이미 사업을 철수했거나 철수 예정이다. 일부 철수 기업 중에는 인도, 베트남 지역으로 퇴각해 영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웃도어 신발 분야 아시아 1위 기업인 트렉스타는 중국 톈진에 설비 50%가량을 남기고 부산으로 철수한다. 칭다오에 진출했던 삼일통상 등도 설비를 100% 매각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톈진의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중국 인건비 상승 속도가 상상을 초월해 투자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면서 “월등한 기술력 없이 단순히 싼 인건비와 임대료만 보고 들어오면 쓴맛을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중국 내수 시장 공략도 가시밭길이다.
산둥성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은 차선책인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대해 ‘그림의 떡’이라는 반응이 많다. 중국에서 물건을 팔고 싶어도 유통망 또는 거래선을 연결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청양의 한 주얼리업체 사장은 “내수 시장을 뚫으려면 현지 중국 업체와 손을 잡아야 하는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끈을 대기가 무척 어렵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정보나 시장 개척 방법을 찾기조차 어렵다"고 한탄했다.
2년 반 전부터 화웨이 등 중국 휴대전화업체에 납품하는 우주전자 또한 비슷한 처지였다. 이중수 총경리는 "중국 내수 시장을 뚫으려면 끈기가 필요하다"면서 "대부분 1~2년 시도하다가 포기하는데 중국 시장은 열릴 때까지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코트라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위해 2010년부터 내륙내수시장개척단을 파견하고 한국상품전, 홈쇼핑을 통한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박용민 코트라 칭다오무역관 관장은 "섬유, 봉제 등 한국 중소업체가 이제는 중국에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중국 대기업에 납품을 통해 내수 시장을 뚫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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