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휩쓸려 재난선포 남발 '우려'…"명확한 기준 마련·관련법 정비 뒤따라야"
시·도지사 재난사태 선포권…"예산지원 보장해야 실효"
신속 대응·피해 최소화 가능…예산지원 방안 없으면 '반쪽짜리'
여론 휩쓸려 재난선포 남발 '우려'…"명확한 기준 마련·관련법 정비 뒤따라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권을 주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 취지를 살리고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가 예산지원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각종 재난상황 발생 때 광역자치단체장이 '재난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전국 광역시·도 안전분야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제54차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열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심의, 확정했다.
이날 발표한 계획 중에는 국민안전처 장관 뿐만 아니라 재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시·도지사에게도 '재난사태 선포권'을 부여해 신속히 인력·장비를 동원하고 응급구호장비 등 비축물자도 사용토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전국 시·도 안전 관계자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민안전처 건의-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국민안전처 장관 재난 선포로 이어지는 기존 절차를 생략할 수 있어 구조구급이 발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또 그동안 중앙정부 위주로 이뤄진 구조구급·응급복구 작업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와 협업으로 더욱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조운희 충북도 안전행정국장은 "재난사태가 터졌을 때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보고가 올라가면 정부에서 나와 확인하는 등 시기적절한 대응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었다"며 "재난사태 선포권이 시·도지사에게 있으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충남도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시·도지사 재난사태 선포권은) 지금껏 정부에 꾸준히 건의해 온 사안"이라며 "재난 발생때 시·도지사의 긴급동원 권한과 다른 지역에서 재난이 났을 때 수습을 돕기 위한 긴급응원 권한 등 발동이 가능해 재난 대처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시·도지사 재난사태 선포권 부여 방안에는 예산지원 계획이 명확히 언급돼 있지 않아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단체장이 재난사태를 선포하면 재난지역에 인력·장비를 동원하고 비축물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산지원 근거를 확립해야 한다"며 "정부 재난관리기금을 사용토록 하거나 특별회계 편성으로 재난대응 예산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배 대구시 안전총괄과장은 "지금까지 자치단체들이 재난지역 선포에 목을 맨 이유가 재난지역으로 되면 복구에 많은 국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시·도시자에게 선포권이 넘어오면 자칫 그동안 지원한 만큼의 국비가 내려오지 않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발표에서 이 부분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예산을 주지 않고 재난사태 선포권만 주면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경기도), "재난사태 선포권 부여와 함께 재난 복구와 관련한 국비 지원을 함께 논의해야 실제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부산시) 등 의견도 나왔다.
다른 한켠에서는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권이 주어지면 여론에 휩쓸려 재난사태 선포를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광역단체장들이 재난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법 등을 정비해야 재난 선포권이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방공학을 전공한 임채현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는 "재난 발생 후 골든타임인 수십 분 또는 몇 시간 이내에 초기 대응을 하려면 지방정부가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광역단체장이 경찰 등 중앙부처 관련 기관들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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