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역사전쟁> ③아픔과 평화만 부각하는 일본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4-14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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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수용소 송환 자국민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비극의 원인 반성은 없이 선량한 피해자만 부각

<동북아 역사전쟁> ③아픔과 평화만 부각하는 일본

시베리아 수용소 송환 자국민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비극의 원인 반성은 없이 선량한 피해자만 부각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한 뒤 여러 이유로 해외에 있던 일본 군인과 민간인은 속속 귀국길에 올랐다. 자국민 귀환을 위한 항구로 일본 정부는 18곳을 지정했다. 개중 한 곳이 동해를 접한 교토부(京都府) 북부 마이주루(舞鶴) 항구였다.

이 항구로 돌아온 일본인은 대략 66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소련 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됐거나 중국 북동부 지방에 있던 사람들로 1945년 이래 1956년까지 귀환했다. 귀환자 중 45만명은 일본이 패망한 이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나 다른 소련 지역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한 경험이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한 지 40년 뒤인 1985년, 마이주루 시는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을 추념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이 항구에 송환기념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의했다. 모금이 시작되자 1988년에 이미 약 7천400만 엔이 들어왔다. 이 돈으로 그 해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2013년 12월까지 관련 유물로 1만2천 점 가량이 기증됐다. 이들 유물은 억류 및 송환자나 그들의 가족이 기증한 것이었다.

일본은 이 박물관 유물을 '마이주루 항구로의 귀환: 일본인들의 억류와 송환 경험 관련 문건(1945~1956)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영어 명칭은 'Return to Maizuru Port: Documents Related to the Internment and Repatriation Experiences of Japanese(1945~1956)'.

위안부 동원에 책임이 없다는 자세를 시종 견지하는 일본 정부. 중국 정부가 자국 여성의 위안부 피동원 관련 문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한다고 나선 일본은 그 순간에 마이주루 송환 박물관 소장품들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과거사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을 겨냥해 흔히 하는 비판이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전쟁 피해만 강조하면서, 평화를 향한 열정만을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한데 그런 일본의 면모는 이 마이주루 송환 관련 문건에서도 여실하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공개된 등재 신청서를 보면 이 문서는 시종일관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60만~8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본 군인과 민간인이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에 종사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들 문건은 "커다란 고난 앞에서도 살고자 하는 인간의 결의를 묘사한다"면서 "이런 경험들은 영원한 세계평화를 향한 열정으로 이어지는 일본 국민의 집단적 기억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고 적극 평가한다.

일기나 삽화, 혹은 시가 대부분인 억류 및 송환 관련 자료들은 보편적인 주제, 다시 말해 피억류인들의 절망과 좌절, 삶을 향한 욕망, 가족에 대한 사랑, 귀향하고자 하는 꿈을 담았다고 한다.

그 어디에도 이런 비극이 초래된 원인이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에 있다는 언급은 안 보인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없다 보니 그것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언제나 일본 혹은 일본인은 선량한 피해자라는 휴머니즘만이 있을 뿐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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