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TV드라마 소수인종 주연 늘어…아직 '새발의 피'
'시청률 회복' 전략…케이블TV는 여전히 '백인들 세상'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미국 TV에서 인종 다양성을 내세운 프로그램 편성이 늘고 있는 것을 둘러싸고 '인구변화 추이를 반영한 것이냐, 시청률 제고를 위한 상업적 전술이냐'라는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NBC·ABC·CBS·폭스 등 미국의 4대 지상파 방송사들은 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소수인종 인물이 주연을 맡거나 이들이 제작한 드라마를 잇따라 방영할 계획이다.
NBC는 '푸엔테스 여인들의 저주'(The Curse of the Fuentes Women)라는 히스패닉계 가족 드라마를 선보이며, '러브 이즈 어 포-레터 워드'(Love Is a Four Letter Word)란 드라마는 한국계 다이애나 손이 대본을 맡는다.
ABC는 지난 1989년 개봉된 영화 '아저씨는 못 말려'(Uncle Buck)를 리메이크한 드라마에서 흑인 코미디언이자 래퍼인 마이크 엡스를 내세웠다.
CBS도 성룡과 크리스 터커가 주연을 맡았던 액션영화 '러시아워'(Rush Hour)를 리메이크한 작품에 흑인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 저스틴 하이어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이처럼 지상파 TV들이 앞다퉈 인종 다양성을 내건 드라마에 열을 올리는 것은 폭스의 '엠파이어'(Empire), ABC의 '프레시 오브 더 보트'(Fresh Off the Boat), '블랙-이시'(Blackish) 같은 간판 드라마들이 예상 외로 인기를 끌면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청률 부진으로 고전했던 양 방송사는 소수 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진 것에 한껏 고무돼있다.
더 큰 이유는 미국 인구분포에서 소수인종 비율이 높아지고 주류인 백인들이 지상파 TV보다는 유료 케이블TV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자꾸만 떨어지는 시청률을 소수인종들이 메워주는 '역설적 현실'이 반영된 셈이다.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은 해마다 늘어나는 소수인종을 겨냥한 드라마와 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2012-13년 미국 인구통계조사를 보면 소수인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37.4%에 달한다.
TV 드라마 시리즈에서 소수인종이 주연을 맡은 비중은 2011-12년 5.1%에서 2012-13년 6.5%로 상승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HBO·AMC·FX 등 유료 케이블TV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백인들의 세상이다.
AMC 인기 드라마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나 HBO의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흑인들의 학살장면이 자주 나오고 주연·조연을 모두 백인이 맡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 결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구분포 면에서 소수인종 비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드라마 주인공 비율은 백인과 비교할 때 아직도 6대1에 불과한 실정이다.
소수인종이 TV 드라마 제작책임을 맡은 비율도 6% 이하에 그치고 있다. 드라마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작가들 가운데 소수인종 비율은 3.5% 미만이다.
최근 한국계 배우 랜달 박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ABC 드라마 '프레시 오브 더 보트'의 원작자 에디 황은 "미국인 방송작가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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