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지진> 고르카 용병들 "지금은 내 생존 위해 싸울 때"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지진이 산중 마을 바르파크를 덮쳤을 때 다니람 갈레는 그의 집과 이웃 수십 명을 잃었다. 이웃들은 집이 무너지면서 압사당했다.
잃은 것은 또 있다. 일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기록한 것, 100년 고르카 용병의 전통을 상기시켜주는 조그만 것들이다. 인도 군에서 30년간 복무하면서 탔던 여러 개의 훈장이다.
갈레는 "그것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갈레의 고향 바르파크는 산악국가 네팔에서도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곳이지만 영국, 인도 등에서 복무하는 그 유명한 '고르카 용병'을 배출하는 곳이다.
바르파크는 지난달 25일 강진의 진앙지에 위치한 탓에 마을 전체 거의가 진흙, 바위, 나무로 뒤덮이고 말았다.
네팔 고르카 지역의 바르파크 마을 출신 남자들은 수 세대에 걸쳐 멀리 떨어진 곳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
강인함과 충만한 자신감으로 유명했던 이들은 예전부터 세계 각지 전장에서 떨친 가공할 만한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이제 그들은 고향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용병으로 또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멀리 떠나버린 지금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고립과 좌절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바르파크로 이어진 길이 끊어져 헬리콥터가 방수포, 담요, 라면 같은 제한된 구호품만 실어나르고 있다.
지난 2일에는 규모 5.1의 여진이 닥친 데다 폭우까지 쏟아졌다.
18살 때 영국 군에 용병으로 입대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홍콩에서 복무했던 발바하두르 구렁(77)은 "전투에서는 총과 탄약이 있으면 싸울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싸울 방법이 없다"며 폐허 속에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갈레는 젊고 건강한 마을 남자들로 구호품 배분 팀을 구성했다. 일부에게는 임시 거주시설을 튼튼히 짓도록 했다. 여성과 어린이들은 돌덩이를 하나씩 치우면서 그릇, 냄비, 곡물 등을 찾고 있다.
네팔 산중 마을의 고달픈 삶은 바르파크의 거의 모든 가정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기꺼이 용병으로 나가게끔 만들었다.
영국 군은 바르파크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포카라 사무소에서 매년 용병 200여명을 모집한다. 인도 군도 매년 3천여명을 충원한다. 고르카 지역은 가장 풍부한 용병 보급원 중 하나이다.
포카라 전역에 얼굴은 가려진 채 군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국·인도·네팔 군과 싱가포르 경찰의 모집 광고이다.
젊은이가 있어야 하는데 돈 벌러 국외로 나가야 하는 딜레마가 이번 지진 때도 보인다. 영국 군에 삼촌이 근무한다는 한 주민은 삼촌이 한 달 이상 여기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집을 다시 지을 수 있을지, 바르파크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 버린다. 여기에는 일자리도, 돈도 없다"고 한탄했다.
영국 국방부는 네팔에서 근무하는 고르카 용병 수십명을 구조활동에 투입했으며 영국 근무자 가운데서도 파견했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군 퇴역 용병 티르타 타파 예비역 중위는 여기저기 산재한 용병 퇴역자 500명에 대한 긴급 구호를 조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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