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승 70주년 앞두고 역사왜곡 논쟁 '한창'
러시아 언론, '역사 왜곡' 논쟁 조명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민간인 2천700만 명 사망 추정. 200일에 걸친 스탈린그라드(現 볼고그라드) 전투로 장병 100만 명 이상 사망.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사상 최대 기록인 6천대의 탱크와 자주포 동원.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이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의 전투에서 치른 희생과 진기록들이다. 1991년 소련붕괴 이후 소련의 정통성을 계승한 러시아는 1차대전을 '조국전쟁'으로, 2차대전을 '위대한(大) 조국전쟁'으로 부르며 그 희생과 승리를 기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불참 소식으로 다소 빛이 바래긴 했지만 러시아는 올해도 여전히 오는 8~10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2차 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역사 왜곡'에 대한 논쟁도 한창인 것 같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상원에 출석해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일들이 날조와 정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특히 승리(2차대전)의 의미를 왜곡하고 검은 것을 흰 것으로, 해방군을 점령군으로, 나치 공범들을 자유를 위한 투사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들은 큰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일부 유럽국가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부터 세계 유력 일간지와 제휴해 러시아 섹션을 실고 있는 러시아 국영 로시스카야 가제타의 국제 프로젝트인 '러시아 비욘드 더 헤드라인즈(Russia Beyond The Headlines. RBTH)'는 6일자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에 올린 러시아 섹션을 통해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역사 왜곡' 논쟁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70년 후, 역사를 둘러싼 전투'(부제: 러시아의 유럽 인접국들과의 현(現) 분쟁이 세계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전승 기념일에 앞선 수개월 동안 2차 대전 승전에서 소련의 역할에 대해 수많은 선동적 성명(발언)들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은 소련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의해 이뤄졌다'는 그셰고리즈 스헤티나 폴란드 외무장관의 발언과 "소련이 전쟁중 독일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의 발언을 사례로 꼽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전승70주년기념조직위원회 회의에서 이들 발언이 "당시 전쟁 때의 사실들을 개조해 왜곡하려는 시도"라면서 "이런 냉소적이면서도 뻔뻔한 거짓말들은 현대 러시아의 힘과 도덕적 권위를 훼손하려는 시도들과 연관돼 있다"면서 이들 발언을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현재 빚어지는 서방과 러시아간 알력과 연관시켰다
'역사 왜곡'에 대한 러시아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메모리얼인권기구'의 니키타 페트로프는 이 신문을 통해 푸틴이 제기한 형태의 역사 왜곡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사실상 전쟁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면서 스헤티나 장관과 야체뉵 총리의 발언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한 "말실수"로, 해당국 정부 공식입장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올레그 부드니츠키 '세계 2차대전 국제 역사·사회학센터' 소장 역시 러시아 외부 전문역사학자들 가운데 누구도 역사를 왜곡하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역사 왜곡 논쟁 자체가 억측이라고 말했다.
반면 모스크바국립대학교의 역사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는 "우리의 이념적 반대자들은 위대한 조국전쟁에 대한 일부 잘 알려진 사실들을 수정해 왔다"고 지적했고 역사학자인 알렉산드르 듀코프 '역사기념재단' 소장 역시 이들 발언을 현재의 정치학과 연계시키면서 발트 3국을 예로 들었다.
그는 "발트국가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역사 도색작업들은 그 자체로 당장 심각한 인권 침해행위"라면서 "(발트 3국중)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끔찍한 소련의 점령'으로 공식 규정한 것은 그들 국가 내 소수 러시아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 그들 정부의 책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듀코프 소장은 이어 우크라이나의 역사학자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2차 대전 당시 범죄행위를 미화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를 개작해왔다"면서 이것이 (우크라이나) 사회의 분열을 촉발했고 현재 진행 중인 내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메모리얼인권기구'의 페트로프는 현재의 역사 왜곡 논쟁은 외국이 아니라 러시아 내에서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러시아에서 누군가가 소련 체제의 억압통치가 드러난 전쟁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할라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두려워하며 '진실이 왜곡됐다'고 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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