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지 말고 힘내요"…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

전형득 기자 / 기사승인 : 2015-05-15 06: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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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없이 상처와 치유 과정 따뜻하게 조명…채시라·김혜자·장미희 등 열연 빛나


 

[부자동네타임즈 전형득 기자]= "자신감을 가져요. 이미 훌륭하니까. 겁먹지 말고 힘내요."

안국동 강 선생은 자신의 등에 칼을 꽂고,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고 나간 제자에게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줬다.

그 제자의 천인공노할 짓으로 지난 30년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오욕으로 물들었지만, 스승은 제자의 허물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안아주었다.

주변에서는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다"고 혀를 차지만 강 선생은 오히려 "춥고 외롭게 자란 사람은 그런 실수 해요"라며 제자를 품는다.

그러면서 '제 발 저린 도둑'으로 좌불안석인 제자를 찾아가 "힘을 내라"고 응원했다.

참스승만이 해줄 수 있고, 참어른만이 베풀 수 있는 아량이다.

이럴 줄 알았다. 제목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지만, 결국 드라마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칼바람도, 폭력도 아닌 따뜻한 햇빛임을 새삼 강조하며 안방극장에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20~30대 청춘스타에 기대지 않고, 막장요소 하나 없이, 채시라·김혜자·장미희·서이숙 등 40~70대 중장년 여배우들의 곰삭은 노련미의 힘을 보여준 KBS 2TV 수목극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지난 14일 시청자에게 환한 미소를 선사하며 막을 내렸다.





◇인생은 상처와 치유의 반복

여고시절 못되고 편협한 담임 때문에 정학에 이어 퇴학까지 당한 뒤 덜컥 '사고'를 쳐 10대에 애 엄마가 된 현숙, 평생 엘리트로 살았지만 마흔이 넘도록 자신만의 성을 견고히 친 채 곁을 주지 않았던 골드미스 현정.

30대에 남편이 바람이 난 뒤 실종되면서 평생 가슴에 한을 묻어두고 살아온 강 선생, 첫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충격을 안고 살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큰 부자가 됐지만 죽을 병에 걸린 장모란.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거대한 설정은 없다. 못된 교사 때문에 퇴학당한 뒤 인생이 꼬여버린 주인공 현숙 정도가 범상하지 않은 사연을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숙이 복수의 칼날을 갈며 살아온 인물도 아니다. 강한 구성이 너무 없어서 제작진이 초반에 우려했을 정도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가 아침저녁으로 넘쳐나고, 그렇지 않으면 현실도피적인 판타지가 펼쳐지는 안방극장에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저마다 현실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중장년 여자들의 이야기를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

방송 내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던 이 드라마는 인생은 상처와 치유의 반복임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주인공들에게 '일생의 상처'를 안긴 가해자들은 분노를 자극했지만, 작가는 그 분노의 밑바닥에 저마다의 사연을 배치해 측은지심을 유도하며 피해자들과 시청자의 분노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았다.

당한 만큼 갚아주고 싶고 너무 괘씸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에 복수를 다하고 살 수 없고 앙갚음을 다하고 살 수 없다. 또 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고 드라마는 지적한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니…힘을 내세요

드라마는 과거가 현재와 같이 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캐릭터의 깊이와 입체감을 살렸고, 그런 작업을 통해 시청자가 인물들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보게 만들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정해룡 KBS CP는 "보통의 드라마에서는 과거는 현재의 원인으로만 작용하지만 우리 드라마에서는 과거는 현재와 같이 살고 있다"며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상처도 치유하고 다른 이들과의 교감도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현숙은 마지막에 30년간 자신을 짓눌렀던 도둑 누명을 벗으면서 오래 묵은 체증을 털어냈다. 말이 30년이지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세월이다.

드라마는 그러나 현숙의 한을 처절하게 그리는 대신,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는 숙제로 풀어나가며 모든 이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했다. 결국 이 또한 다 지나가리니 용기를 내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아보라고.

또한, 그를 괴롭혔던 악덕 교사 나말년이 세월이 흘러 현숙과 사돈지간이 되는 기막힌 인연을 통해 세상사는 돌고 돌기 마련이라고 짚었다.

정 CP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는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계속 공존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인간은 과거를 계속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장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말년은 30년 전 한없이 무시했던 현숙이 누명을 벗고자 노력하고, 당당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썩은 가지인 줄 알았는데 잡초처럼 튼튼하게 자랐구나"라며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현숙의 성장을 인정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결국 '나쁘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그래서 뒷맛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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