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2세 피해 알린 김형률 10주기…특별법은 '제자리'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5 14: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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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유전적 피해 실상 처음 알려…22·23일 부산서 추모제
△ 원폭2세 피해 알린 김형률씨 (부산=연합뉴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말미암은 유전적인 피해자임을 밝히고 원폭피해 2세 환우들의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김형률 씨의 10주기 문화제와 추모제가 22, 23일 부산에서 열린다. 사진은 윤정은 작가가 담은 생전 김씨의 모습. 2015.5.15 << 윤정은 작가 제공 >> wink@yna.co.kr

원폭 2세 피해 알린 김형률 10주기…특별법은 '제자리'

2세 유전적 피해 실상 처음 알려…22·23일 부산서 추모제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아들이 죽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특별법은 통과될 기미가 안 보이네요."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말미암은 유전적인 피해자임을 밝히고 원폭피해 2세 환우들의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김형률 씨.

오는 29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죽은 아들을 이어 원폭 2세 환우 인권운동을 해온 아버지 김봉대(79·부산 동구 수정동)씨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들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했다.

그동안 원폭 2세 환우회 고문으로 활동해온 김씨는 15일 "형률이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원폭피해 2세 환우가 국내에만 1천350여명에 이른다"며 "하루빨리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태어난 지 20일 만에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김형률 씨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을 괴롭힌 아픔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김씨는 2002년 우연히 원폭 피해에 관한 의사 논문을 보게 되면서 비로소 원폭 피해자인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가 앓아왔던 병명은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 원인은 원폭이었다.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져 조그만 감염에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희소난치병이다.

몸무게 37㎏의 가냘픈 몸이었던 그는 '커밍아웃'을 하고 원폭 2세 피해자들의 인권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김씨의 노력에 2004년 원폭 1세와 2세들의 기초 현황과 건강실태조사가 시행됐고, 김씨는 환우 500여명을 찾아내 이들의 인권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김씨는 1974년 당시 보건사회부가 원폭피해의 중대성을 알고 400병상의 규모의 병원을 짓는 것을 추진했지만 외교부가 이를 폐기처분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김봉대 씨는 아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방에 3년간 모은 원폭 관련 자료와 작업했던 컴퓨터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원폭 2세 환우회 초대회장으로 그가 간절히 원한 것은 원폭피해 2세 환우들에 대한 지원이었지만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5년 5월 29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2005년 당시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은 그가 죽은 뒤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18대 국회에서도 특별법이 발의됐다가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 4명이 각각 특별법을 상정했지만 상임위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전 김씨가 자주 말했던 문구인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제목으로 김씨의 삶을 재조명한 책을 쓴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는 "그동안 원폭의 문제를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다뤄왔지만 김씨는 원폭2세 환우를 끄집어내 인권과 건강, 권리의 문제로 이끌었다"며 "현재의 탈핵 문제도 기술이나 경제성이 아닌 생명과 건강이라는 화두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권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영화와 책으로 계속되고 있다.

박일현 감독이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데 이어 조만간 '아들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일본 평화운동가인 아오야기 준이치(66)씨가 김 씨가 생전에 남긴 글 등을 모은 유고집 '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부산시민사회단체와 김형률추모사업회는 김 씨의 10주기를 맞아 22일, 23일 각각 해운대 시청자미디어센터와 민주공원에서 문화제와 추모제를 연다.

문화제에서는 김씨의 불꽃 같은 삶을 담은 추모영상과 토크 콘서트가 진행된다.

다음날 민주공원에서 추모제가 열린 뒤 추모사업회는 김씨를 추모하는 나무와 비석을 세운 뒤 김씨가 묻힌 영락공원을 참배할 예정이다.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당한 한국인은 총 7만여명으로 현재 생존한 피폭 1세대는 2만6천여명에 달한다.

원폭피해 2세대는 2천300여명으로 이 가운데 김씨처럼 유전적 피해를 입은 2세 환우는 1천35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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