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은 조국에…" 애국지사 최재형 위패 현충원 봉안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러시아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로 꼽히는 최재형 선생의 위패가 순국 95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됐다.
최 선생은 지난 1920년 일제의 총탄에 맞고 순국했으나 시신의 행방을 찾지 못해 그의 항일 정신을 담은 위패가 먼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최재형장학회는 최 선생의 후손이 낸 위패 봉안 신청이 심사를 통과한 데 따라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됐다고 15일 밝혔다.
최 선생의 위패는 현충관에서 '호국 영령 합동 위패 봉안식'을 마친 뒤 현충탑 인근 위패판에 '애국지사' 자격으로 봉안됐다.
위패는 최재형장학회 김창송 회장의 손에 들렸으며, 최 선생의 부인인 최 엘례나(1952년 사망) 여사의 위패와 함께 모셔졌다.
최재형장학회는 최 선생의 순국 95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그의 위패 봉안을 추진해왔다.
최 선생의 손자인 최 발렌틴(77) 러시아한국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은 지난 1월 최 선생의 위패 봉안 신청을 냈다.
장학회 관계자는 "최 선생이 순국한 지 95년 만에 위패가 조국으로 돌아오게 돼 감격스럽다"면서 "최 선생이 목숨을 바쳐 지켰던 불굴의 항일 정신이 조국에도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최 선생은 어린 시절 연해주로 이주해 기업가로 크게 성공한 뒤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을 지원했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최 선생은 연해주 한인 후손에 대한 교육 지원도 아끼지 않아 생전 연해주에 세운 학교만 30개에 달한다.
연해주 한인들은 독립운동과 후손 교육에 힘썼던 최 선생에게 '최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뜻)'라는 애칭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 선생은 1920년 4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일제가 한인을 집단 학살한 '4월 참변' 당시 순국했다. 그러나 일제가 총살 후 시신을 땅에 묻어버리고는 흔적을 지운 것으로 알려져 아직 시신의 행방이나 묘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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