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토마스 헬룸 "무편집 방송이 마음 사로잡았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9 18: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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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시청자와 관련 있는 얘기 해야 한다"
△ 토마스 헬룸 노르웨이 국영 방송국 PD (서울=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토마스 헬룸 노르웨이 국영 방송국 NRK 프로듀서가 1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5.5.19 yangdoo@yna.co.kr

<인터뷰> 토마스 헬룸 "무편집 방송이 마음 사로잡았다"

"TV는 시청자와 관련 있는 얘기 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금요일 밤 지친 몸을 소파의 뉘이고 TV를 틀었더니 깊은 산 속을 달리는 기차의 창밖 풍경만 몇 시간이고 펼쳐진다면?

2009년 노르웨이 국민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다른 채널에서는 음악 리얼리티쇼 '엑스팩터'(X-factor)가 방송되고 있는데 공영방송 NRK를 틀자 다른 세상에 온 듯 달리는 기차에서 본 바깥 풍경만 이어졌다. 그것도 7시간 씩이나 지켜봐야 했다.

이 방송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슬로우TV'다. 방송이 시작되자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 '미친'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고 평소 4%대이던 시청률은 15%로 치솟았다.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슬로우TV'는 134시간 동안 유람선 여행을 따라가기, 12시간 동안 장작 태우기, 8시간 동안 양털 깎아 실을 만들고 뜨개질하기, 18시간 동안 알 낳으러 이동하는 연어 관찰하기 등 '황당한' 주제로 방송을 이어오고 있다.

SBS 주최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NRK방송의 '슬로우TV' 제작자 토마스 헬룸 PD를 1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토마스 헬룸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 꿈꾸는 것을 우리의 삶과 똑같이 편집하지 않고 방송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인기 비결을 스스로 분석했다.

그는 또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시청자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 관심이 있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며 "시청자는 빠르게 정보를 접하기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휴식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 '슬로우TV'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베르겐 철도가 100주년을 맞이했는데 어떤 식으로 기념하면 좋을까'라는 주제로 얘기했다. 팀원 중 한 명이 '편집 없이 전체 촬영을 그대로 내보내면 어떻겠냐'고 했다. 사실 술 먹고 한 농담 정도로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에 처음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을 때는 임원들이 그냥 웃더라.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이런 '미친' 방송을 했을 때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아이디어가 더 나올 수 없다고 설득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방송이니까 미친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슬로우TV'는 방송계에 새로운 충격을 줬고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어떤 점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

▲ 이전에 있었던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서로 "어제 그 프로그램 봤어?"라고 물었고 호응이 이어질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유는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휴식, 느림, 명상이 필요했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배울 게 있다'고 하더라.(웃음) '우리는 기차 여행, 유람선 여행을 있는 그대로 찍었을 뿐 어떤 설명을 더하려 하지 않았다. 카메라에 들판을 거니는 소가 찍히면 시청자는 '저 소는 어디에 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을 때 시청자는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을 즐기게 된다.

TV는 여전히 영향력 있는 매체다. 금요일 프라임타임에 방송한 것은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줬다. HD 화질에 스포츠 경기 촬영에 쓰이는 고성능 카메라를 사용하는 등 완성도도 높았다. 우리가 다룬 주제는 노르웨이의 문화나 사회와 연관이 있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 꿈꾸는 것을 우리의 삶과 같이 편집 없이 방송한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 '슬로우TV'의 성공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사는 노르웨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 노르웨이가 다른 국가와 특별히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국에는 그 나라에서 관심 있는 주제가 있고 또 멋진 자연환경이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슬로우TV'와는 당연히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 나라의 문화와 상황에 맞춘 주제를 잘 선정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는 11월에는 미국에서 12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용의 슬로우 로드 무비가 방송될 예정이다.

-- 방송은 이미 올드미디어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방송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 TV는 시청자와 관련이 있는(relevant)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주제, 시청자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본연의 기능을 잘해나갈 수 있다면 TV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아이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검색을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큰 스크린으로 편하게 콘텐츠를 즐기기 원한다. TV는 바깥세상을 보는 창문이고 스마트폰 등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 시청자들은 펜듈럼(시계추) 같이 양극단을 원하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정보를 접하고 싶어하고 또 접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휴식을 원한다. 미디어는 이런 시청자의 행태를 읽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미디어는 뉴스를 빨리 전하는 것과 별개로 시청자에게 휴식을 주는 콘텐츠도 제작해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은.

▲ '슬로우TV'를 매주 금요일에 방송하면 사람들이 지루해하겠지만 1년에 1~2번씩만 방송하기 때문에 노르웨이 시청자들은 '슬로우TV'를 하나의 이벤트로 여긴다. 연내에 10시간 동안 암벽 등반하는 '슬로우TV'를 방송할 예정이다. 또 파도와 밀물 썰물의 모습을 담은 12시간짜리 방송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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