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아빠' 뺑소니사건 해결 실마리 제공 등 순기능도
< SNS 신풍속도> ① '받은 글',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허위사실 급속 확산 경로로…연예인 등 명예훼손 우려
'크림빵 아빠' 뺑소니사건 해결 실마리 제공 등 순기능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허위 사실 유포가 새삼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옛날부터 말을 옮기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우리네 삶의 모습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등장하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퍼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재밌는 혹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런 기질과 딱 맞아떨어지는 게 바로 SNS다.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혹은 "그 사진 봤어?" 하며 자신이 읽은 글이나 사진을 다른 지인에게 바로바로 보내는 식이다.
그 이야기를 읽고 즐거워하는, 혹은 놀라워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보를 유통하는 통로는 비단 SNS만이 아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항상 '온라인' 상태인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거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사교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닐 때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13일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송파·강동 동원예비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이 소식이 온라인 기사로 알려지자 댓글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이버 아이디 'pchn****'는 "현장에 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훈련 강제 종료되고 해산됐고, 사방에 전부 현장 통제 중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댓글 남깁니다. 사고는 같은 조원들에게 발생했고 한 사람이 사격 시작 후 총성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사격 안 하고 기다렸다가 주변의 모든 사격이 끝날 때쯤(일부러 그런 듯) 총을 들고 일어나 "강남구 선착순 다섯 명!!!"을 외치면서 누워있는 조원 4명한테 갈기고 나머지 한 발은 자살하는 데 썼어요"라는 내용의 댓글을 썼고 단숨에 '베스트 댓글'이 됐다.
기사가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올라온 댓글인데다 구체적인 기술에 충격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은 이 댓글을 복사해서 옮겼다. '받은 글)'이라는 글자가 앞에 붙은 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번졌다.
하지만, 군 당국 조사결과 이 글에 담긴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부상자들의 실명이 적힌 군 내부 자료도 SNS에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정훈공보실'이 작성한 '52사단 동원훈련 중 예비군 총기 사고 관련 설명 계획'이었다.
이 문서에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이름과 나이, 상처 부위와 상태, 입원한 병원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받은 글'이라는 두 단어를 추가하는 순간 책임의식은 증발한다. '나도 받은 글이니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출처는 다양하다. 위 사례와 같이 기사에 달린 댓글부터 일간베스트저장소·오늘의유머·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가공된다.
사실 카카오톡이나 SNS로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허위사실을 퍼뜨린 것만으로도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인 만큼 단순 전달자도 처벌할 것인지는 고소인 의사와 수사상황 등을 고려해 수사기관이 결정한다.
이와 유사한 피해를 가장 자주 보는 직종이 있다면 바로 연예인일 것이다. 소위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말이다.
사실이 아니라며 '무시'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검·경에 의뢰해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갈 때도 있다.
지난 2월. 걸그룹 이엑스아이디(EXID)의 하니가 결혼한 중견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나돌자 소속사 예당엔터테인먼트가 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소속사는 "전혀 사실이 아닌 루머여서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이 이를 접하고 사실인 양 받아들여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배우 이영애는 2013년 9월 남편 정호영씨와 '스폰 관계'라는 글을 올린 악플러와 블로거를 무더기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씨 부부가 결혼한 직후인 2009년 9월 싸이월드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영애 남편 정호영 이야기' 등 악성 루머를 게시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윤모(35)씨는 지난 1월 말 벌금 8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SNS가 집단지성과 만나 훌륭한 일을 해낼 때도 있다.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10일 임신한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 들고 귀가하던 강모(29)씨가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씨의 지인이 인터넷에 애끊는 사연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에는 자동차 전문 온라인커뮤니티인 보배드림 이용자의 활약이 컸다.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 누리꾼은 각자의 분석결과를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 하지만, 이 CCTV가 촬영한 차량은 이번 사고와 연관이 없어서 사건 해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의 한 공무원이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기사에 "우리도 도로변을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댓글을 달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화질이 좋지 않아 번호 판독은 불가능했지만, 열아흐레 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뺑소니 차량을 특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는 기사가 SNS 등을 타고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단서가 잡힌 셈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청주의 한 시내버스에서 40대 여성이 70대 할머니를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에 올라와 처벌을 받게 됐다.
이 여성이 지갑을 떨어뜨리는 것을 본 할머니가 '지갑을 잘 챙기라'고 했더니, '무슨 참견이냐'며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의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SNS에서 논란이 일자 경찰은 탐문수사를 벌였고, 며칠 뒤 폭행을 당한 할머니가 아들과 함께 경찰서를 찾아와 처벌을 요구하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산남동에서 유명한 여자'라는 댓글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 이 여성을 긴급체포했으며, 결국 이 여성은 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여성은 경찰에 체포된 날에도 이웃의 얼굴을 때리는 등 지난달 중순부터 최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주민 등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