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세월 뛰어넘어 고민 나눈 서울대 여성 공학도들
공대 여성동창회, 첫 '여성공학인 네트워크의 날' 행사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학교 다닐 때부터 늘 인적 네트워크가 아쉬웠어요. 좋게 말해 홍일점이지 마치 '짱돌' 같은 존재였죠. 그래서 학부 입학하자마자 유학을 생각했어요. 여자들이 많은 데 가서 숨 좀 쉬고 살아야겠다 싶었죠."(송정희(57)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 서울대 전자공학과 77학번)
"진로를 고민할 때 여학생으로서 굉장히 아쉬워요. 남학생들은 운동 동아리나 동창회 등으로 선후배 관계가 잘 구축돼 있어 대학원생이나 직장인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기 쉬운데 여학생들은 그게 어려워요. 공대 내 학과별로 비슷한 또래 여학생끼리 고민을 나눌 자리도 없고요."(김지영(21), 서울대 재료공학부 13학번)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많은 공과대학에서 '공순이'로 불리며 특이한 존재로 취급받은 공대 여성들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대 공대 여성동창회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30일 개최한 '서울대학교 여성공학인 네트워크의 날'(WINNS Day) 행사에서다.
교내 미술관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각계에 진출해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졸업생들과 젊은 재학생 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고자 마련됐다. 50년대 학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졸업생과 재학생 동문 150여명이 참석한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세대별 동문들이 패널로 나와 여성 공학도로서 삶을 공유하는 토론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공대생 중 여성 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여성 공학도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인맥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은 여전했다.
장경순(50) 서울지방조달청장(건축학과 83학번)은 "한국은 가뜩이나 직장 문화가 강한 데다 당시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 보니, 집단에서 좀 더 편하게 일하는 방법 등 남들이 다 아는 정보를 얻기조차 매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정은혜(36) 서울대 에너지공학부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 98학번)는 "공대 여학생 비율이 20% 정도까지 높아진 시기에 학교에 다녔음에도 일과 가정의 양립 등 어려운 문제에 도움을 구할 선배의 존재가 아쉬웠다"고 말했다.
재학생 김지영씨는 "현재 공대 여학생이 570여명으로 과거보다 훨씬 늘었지만, 오히려 그러다 보니 주체적으로 여학생 모임을 만들고 결속하려는 생각은 더 줄어든 것 같다"며 동문 선배들을 만날 자리를 체계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졸업한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선배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라"고 조언했다.
배수현(43) 한국3M 부장(섬유고분자공학과 91학번)은 "선배는 후배가 행여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먼저 연락하기를 꺼리지만, 후배한테서 오는 연락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며 "후배들의 고민은 선배들이 이미 겪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조언을 구하면 성심성의껏 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동창회장인 류전희 경기대 교수(건축학과 82학번)는 "올해를 기점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 여성동창회를 '여성 공학인 네트워크'로 변화시켜 인적 네트워크를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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