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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에 살고 있는 중립국행 포로 출신 김명복씨가 조경덕 감독과 화상 대화를 하고 있다. 중립국행 포로 76명중 한명인 김씨는 고향인 북한 방문을 소망하고 있다.(AP=연합뉴스) |
"고향에 가고 싶다"…한 많은 중립국행 전쟁포로 76인의 삶
현재 11명 생존…AP통신 60년만의 귀향 추진 김명복씨 삶 조명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고향땅을 밟아 부모님 산소와 다니던 교회가 있던 곳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브라질의 서부내륙 마투그로수주 쿠이아바시에 사는 한국전쟁 당시 중립국행 전쟁포로 출신의 김명복(79) 씨는 AP 통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부모님, 특히 나를 교회에 데려가시곤 했던 어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훔쳤다.
30일 AP통신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남한도, 북한도 아닌 타향살이를 택한 반공포로 76명의 한 맺힌 삶을 조명했다.
평안북도 룡천이 고향인 김씨는 1953년 반공포로 석방조치 때 풀려나 제3국 행을 택한 76명 중 한 명이다.
이들 76명은 북한의 억압적인 체제하에서 남한에서 포로로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처형될 것이 두렵고 종교적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좇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 피붙이 하나 없이 인민군으로 낙인 찍혀 살아야 하는 남한에 정착하는 것도 거부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인도와 같은 중립국뿐이었다.
김씨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인민군에 징집된 지 한 달 반 만에 국군에 투항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삶은 참혹했다.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전쟁터보다 더 살벌한 싸움이 벌어져 사망자까지 나왔다.
석방된 뒤 제3국을 택한 포로들은 먼저 인도로 보내졌다. 일부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으나 정전 협정상 중립국만 택할 수 있었다.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의 2001년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2년간 인도에 남았다가 60명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10여명은 남한이나 북한으로 돌아갔다.
타국에서 이들은 의학교수, 채석장 주인, 어선 선주, 목사 등 다양한 삶을 살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자신을 '조센진'이라고 비하하는 일본인을 살해해 27년간 감옥과 정신감호소 등을 전전한 포로도 있었다.
김씨는 1956년 브라질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중 아무도 고향땅이 이토록 오랜 시간 '평화 협정'이 아닌 휴전 상태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채 분단돼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은 한국 출신 이민자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다. 동포들은 이들을 단순히 북한 인민군 출신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제3국 선택 포로 76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귀향'을 제작 중인 조경덕 감독이 2009년 인터뷰했던 21명 중 10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조 감독에 따르면 남은 11명이 76명의 반공 포로 중 생존자 전부다.
조 감독은 김씨의 한국 방문에 동행하며 김씨는 한국에서 거제 수용소와 판문점을 방문할 예정이다.
마지막 고향행이 될 이번 방문에서 김씨는 남한과 북한에 모두 가고 싶어하지만, 북한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씨는 "북한이 위험한 나라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고향땅을 꼭 밟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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