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크 김 LA카운티 지법 판사
"한국, 플리바게닝 없는 재판 경이로워"
(롱비치=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한국 사법제도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플리바게닝(유죄 인정이나 증언의 대가로 형량을 경감·조정하는 협상제도) 제도 없이 재판을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마크 김(53)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지법 판사는 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법원에서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사건이 워낙 많아 이 제도가 없으면 법원이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 법원에서 한인으로 가장 긴 17년간 판사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달 한국에서 대검찰청과 세계한인검사협회(KPA) 공동 주최한 '2015 서울 국제형사법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는 국민참여(배심원) 재판·플리바게닝제·법관 임용 문제 등 한미 양국 간 사법제도 차이와 감청 허용 논란, 청문회 제도 등을 놓고 소신을 피력했다.
다음은 김 판사와 일문일답.
-- 한국에서 열린 국제형사법 콘퍼런스 다녀왔는데 소감은.
▲이번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한국의 국민참여재판, 즉 배심원 재판이다. 한국은 지난 2008년부터 배심원 재판을 시행하고 있다. 배심원 재판을 도입할 때 법원에서 제일 반대했다고 들었다. 배심원들이 '팩트 파인딩'(사실인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배심원제는 미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독일·미국 시스템을 합쳐놓은 독특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미국은 경범이든 중범이든 피고인이 신청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보통 중범이어야 한다. 또 배심원들이 유·무죄 뿐만 아니라 형량도 권고하는 게 눈에 띄었다.
-- 한미 양국 간 배심원제 차이는.
▲미국에서는 형사 재판의 경우 무조건 배심원 재판으로 간다. 예외가 검사와 피고인 변호사와 합의할 때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는 배심원들이 재판부에 권고하지만, 미국에서는 배심원들의 판단이 판결과 직결된다. 미국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오면 판사가 불만이 있더라도 이를 번복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가능한 게 차이다.
현재 각국에서 한국 배심원 재판을 눈여겨 보고 있다. 한국은 인구 5천만 명이지만, 수출로 보면 세계 10위, 국내총생산(GDP)은 11위 경제대국이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배심원제가 성공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배심원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차이지 결과가 아니다.
-- 한국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제가 본격화됐다.
▲한국에서 변호사 배출이 매년 2천 명이라면, 미국은 매년 15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도 이젠 어느 로스쿨을 가느냐가 중요해졌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가려면 학비가 연간 8만 달러(8천900만 원)로 비용이 많이 든다. 졸업해도 직업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많은 로펌에서 변호사를 해고했으며 신입 변호사도 뽑지도 않았다.
미국에서는 현재 로스쿨 3년제를 2년제으로 바꾸자, 그것이 아니면 2년제로 하되 1년간 인턴십을 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로스쿨 많이 개설한 것은 기회를 주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특정대학 쏠림현상'이 두드러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 한국은 불기소 사례가 많아 무죄율이 낮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고 기소 여부도 결정짓지만, 미국에서는 경찰이 수사를 한 뒤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그것이 다르다. 한국에서 검찰이 기소를 하면 95%가량이 유죄인데, 이는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도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 거의 유죄가 난다. 다만, 미국에서는 90%가량은 합의를 하고 5%만 재판으로 간다.
-- 플리바게닝 제도가 한국에서는 낯설다.
▲한국 사법제도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플리바게닝 제도 없이 재판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 많은 재판을 이 제도없이 다룰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국에서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으면 법원이 돌아갈 수 없다. 사건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LA카운티의 형사재판은 90% 이상이 플리바게닝으로 끝난다. 나도 매년 300건 정도 사건이 들어오는데 이 가운데 실제 재판은 30건밖에 안 된다. 플리바게닝 제도는 검사와 피고인의 변호사가합의를 보고, 이것이 실패하면 판사가 개입할 수 있다. 미국에서 플리바게닝 제도는 굉장히 중요하다.
-- 한국에서 플리바게닝은 정서상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배심원 재판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민간인이 직접 형사재판에 참여하게 된다면 플리바게닝을 하더라도 반감없이 믿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명령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26개 주에서 행정명령이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 하나는 행정명령에 따른 피해가 얼마나 크냐이며, 나머지는 연방 대법원에서 승소 여부다. 미 행정부에서 상고를 하지 않은 것은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옳다 그르다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도 2년 전에 '나는 왕이 아니고 대통령으로 한계가 있다'면서 이민개혁 처리를 주저한 바 있다.
--법원장을 하다가 다시 판사로 재직 중이다.
(※김 판사는 1990년 지방 검사보를 거쳐 1998년 LA 카운티 법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으며, 2006년부터 3년간 LA 카운티 남부지법 법원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동기나 후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모두 옷을 벗는 게 관례라고 들었는데 놀라운 일이다. 관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동료가 승진해 옷을 벗는다면 손실이 너무 크지 않나.
미국에서는 다들 법원장을 싫어한다. 같은 월급 받고 재판은 하지 않고 행정업무를 봐 업무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판사를 하고 싶어 한다. 법원장이 되더라도 판사하는 날을 기다린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