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풍류의 단오…생동감은 어디 가고 불안감만
천 년 전통 이어온 강릉단오제도 전례 없이 취소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성한 날은 언제일까? 바로 음력 5월 5일인 단오다. 세상 만물이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때. 이 날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여유와 신명 속에 풍류를 한껏 즐겼다.
그 싱그러운 멋을 하나의 화폭에 절묘하게 담아낸 대표적 회화 작품이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심계유목도(深溪遊沐圖)'. 말 그대로 깊은 계곡에서 놀고 멱감는 모습을 압축해 그렸다. 일반에겐 '단오 풍정(端午風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림이다.
맑은 시냇물이 찰랑찰랑 흘러내리는 어느 산기슭. 아낙들이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거나 그네를 탄다. 몇몇은 웃통을 벗어부친 채 세수를 하고 멱을 감는다. 이 장면을 두 사내가 바위 뒤에서 슬쩍 훔쳐보며 개구쟁이처럼 키득키득 웃는다. 해학과 여유가 넘치는 풍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랬다. 봄의 끝자락이자 여름의 들머리에서 맞는 단오는 모내기와 씨뿌리기를 마치고 모처럼 한숨을 돌리는 농한기였다. 설, 추석, 한식과 더불어 4대 전통명절.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 등의 놀이를 맘껏 즐겼다. 그러면서 다가온 여름의 무더위에 대비했다. 더위를 쫓고 시원하게 여름을 지내라는 뜻의 단오부채(端午扇)를 주고받았던 것.
대표적 명절에 멋과 풍류가 넘치게 됨은 지극히 당연한 일. 부족국가 시대인 마한 때부터 이날에는 신에게 제사 지낸 뒤 노래하고 춤추며 밤낮으로 어울려 놀았다. 신라시대 때부터는 단오절이라고 해 공식 명절로 정하고 한껏 즐겼다. 말 그대로 신명의 축제였다.
단오의 멋과 여유와 풍류는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첨단을 향해 숨가쁘게 내달리는 속도의 시대이지만 그 깊은 뿌리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것.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를 비롯해 영광 법성포단오제, 경산의 자인단오제 등을 대표사례로 꼽을 수 있다.
올해 단오는 양력으로 오는 20일이다. 마침 주말이어서 인파 속에 생동감 넘치는 축제가 기대되건만 작금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연일 전국을 뒤흔드는 메르스 파동에다 근래 없던 가뭄까지 겹쳐 잔치를 즐길 형편이 전혀 아닌 것. 여유와 풍류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특히 수십 년 만의 불청객 초여름 가뭄은 전국 산천을 삭막하게 바꿔놓고 있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논바닥은 급기야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생명수를 잃은벼들은 시름시름 말라간다. 민심 또한 마른 들판처럼 쩍쩍 갈라지며 타들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 공포까지 몰려와 한 달이 넘도록 도무지 물러날 줄 모른다.
이에 따라 올해 단오는 어느 해보다 불안하고 썰렁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 축제를 즐길 분위기가 전혀 아닌 것이다. 대표적 단오행사인 강릉단오제가 최근 전격 취소됐고 법성포단오제와 전주단오제, 경산자인단오제, 수원 영통청명단오제도 모두 중도 무산됐다.
이처럼 축제 없이 뒤숭숭한 단오를 보내기는 올해가 처음이 될 듯하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축제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던 지난해에도 강릉단오제만은 천 년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예년처럼 어김없이 열렸다. 올해 6월은 극심한 산천의 가뭄에다 모진 축제의 가뭄까지 견뎌야 하는 것. 메르스 광풍이 조속히 사라지고 전국에 단비가 흡족하게 내려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7월에는 평소 일상을 되찾으며 축제가 하루바삐 제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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