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진핑 체제서 관계 악화…변화 가능성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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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묘(평안남도 회창군) (연합뉴스 자료사진) |
<6·25 65주년> ④북중관계, 협력과 갈등의 역사
북중, 국공내전 지원과 6·25 참전으로 혈맹 구축
김정은·시진핑 체제서 관계 악화…변화 가능성 주목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과 중국의 오랜 혈맹관계가 양국 최고지도자들의 세대교체와 맞물려 변화하고 있다.
동맹관계였던 양국 관계는 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과 중국 시진핑(習近平) 체제 이후 경제협력에 중점을 둔 '정상적인 이웃국가'로 탈바꿈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늘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부침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냉랭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미지수다.
◇ 김일성·김정일 정권, 혈맹 강화 속 친중파 제거
한국전쟁에서 미국 등 유엔군에 의해 궤멸해가던 김일성 정권을 구원한 것은 중국인민지원군이었다.
중국은 연인원 60∼70만의 중국인민지원군을 파병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등 18만명이 훨씬 넘는 전사자가 피로써 북한을 지켰다.
이는 어떻게 보면 중국의 보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 내전에서 김일성 정권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양국은 서로 희생을 주고받으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맺었다.
양국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불리는 연안파 숙청, 1960년대 후반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혈맹관계를 지켰다.
북한과 중국은 1961년 7월 베이징에서 상대 국가가 군사적 공격을 받으면 전쟁에 자동 개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중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저우언라이(周恩來) 등 항일과 한국전쟁 속에서 혁명의 역사를 공유한 1세대 지도자의 통치체제로 혈맹 복원이 가능했던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은 북중 갈등과 중소 분쟁을 겪으면서 자주 외교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내정 간섭과 영향력을 경계하며 인적 청산에 나섰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후계자 내정 직후 권부 전반에 퍼져있던 빨치산 유자녀 중에서 핵심 수십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방으로 축출했다.
빨치산 유자녀 가운데 중국과 연고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때 사실상 중국 인맥은 정리됐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속에서도 한동안 순조로운 듯했던 북중관계는 1992년 한중수교로 다시 얼어붙었다.
여기에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북한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급기야 1990년대 중반 대규모 아사 사태가 발생했고 북핵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
하지만 결국 북한이 기댈 곳은 중국뿐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5월 중국을 전격 방문,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1983년 후계자 신분으로 방중한 후 무려 17년만의 나들이였고 남북 정상회담을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김정일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관계는 정치적 동맹을 넘어 경제적 밀착으로 확대됐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의 지원과 교류를 통해 기아사태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가중시키는 부작용도 동반했다.
◇ 김정은·시진핑, 정치적으로 냉랭한 관계…경협은 유지
북중관계는 2011년 말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김정은이 3대 세습 정권의 최고지도자에 오른 이후에도 한동안 순탄한 듯싶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장성택과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의 특사 방문도 이어졌다.
그러나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해 12월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양국관계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웠다.
더욱이 2014년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양국의 전통적 혈맹관계가 통째로 흔들리는 모양새다.
북중 관계사에서 일부 굴곡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을 먼저 찾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북이 우선이던 전례가 무너지면서 김정은 정권은 자존심과 체면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됐고 중국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불만은 노골적으로 표출됐다.
북한 노동당의 한 간부는 최근 북중관계에 대해 이례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다"며 불편한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북중 고위급 교류가 사라진 가운데 북한은 중국 지도부를 겨냥해 '대국주의', '줏대없는 나라'라고 비난까지 했다.
북한은 매체를 통해 가급적 중국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북한 정권을 지켜준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해서도 외면하는 태도를 취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참배하며 북중 혈맹을 과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혈맹관계의 변화 움직임은 중국 지도부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지난해 공개석상에서 "중국과 북한이 군사동맹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맞지 않다", "어떤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 중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며 양국의 '정상적 왕래'를 강조했다.
중국의 이런 변화에 대해 베이징의 상당수 외교 관측통들은 핵실험 등의 '대형악재'보다는 오히려 '시대변화'로 보고 있다.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며 글로벌 외교전략을 짜는 시진핑 체제로서는 북중관계의 기준점을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맞추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협화음 속에서도 양국의 경제협력은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대중 무역 규모는 68억6천만달러(수출 28억4천만달러, 수입 40억2천만달러)로 전년보다 4.9% 증가했다.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2013년 89.1%에서 지난해 90.1%로 여전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최근 북러관계 강화 등 외교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깊숙이 뿌리내린 대중국 의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중국 역시 동북아를 둘러싼 미국과의 치열한 외교전쟁 속에서 대북 영향력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최근 북러 관계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한과의 냉랭한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대북 영향력 유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양국간의 서먹한 현재 국면이 마냥 오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외교소식통들은 "중국도 현재의 북중관계가 불편하고 북한 역시 이대로는 생존이 어려운 만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며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절박할 것인지, 또 각국의 스타일도 있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양국 모두 국가이익이라는 이해관계로 관계개선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시진핑의 선 방한으로 화가 나있는 김정은을 달래고 소원해진 관계를 풀기 위해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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