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 '남침 명확화' 기준 제시·학도의용군 재조명
<6·25 65주년> ⑥교과서 속 '6·25'…사변→남침→전쟁
시대에 따라 서술 내용 달라져…'북괴'→'북한'
이명박 정부 때 '남침 명확화' 기준 제시·학도의용군 재조명
(세종=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6·25전쟁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이다.
교과서는 학생들이 분단의 아픔과 평화, 통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 담긴 6·25전쟁에 관한 서술은 세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학계의 연구 성과, 저자의 역사적 시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 '남침' 사료 보강한 한국사 교과서…학도의용군 서술도 강화
현재 고등학교 신입생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한국사 검정교과서는 모두 8종이다.
이 가운데 전국 고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미래엔' 교과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사 교육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미래엔 교과서는 전체 고교의 약 3분의 1이 채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학교에서 활용되는 이 교과서에는 6·25전쟁의 배경과 발발, 피해와 영향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특히 개정 직전의 교과서와 비교해 북한의 남침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보강됐다.
2011년부터 사용된 직전 교과서는 6·25전쟁의 배경에 대해 "1950년 소련은 중국과 상호우호동맹조약을 맺은 후 북한의 남침계획을 승인했고 중국도 미국의 전쟁 개입이 있을 경우 참전할 것을 북한에 약속했다"고 서술했다.
반면 현재 교과서는 이런 내용뿐 아니라 '사료읽기' 코너에서 6·25전쟁을 앞둔 19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북한 김일성 주석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대화 기록을 추가했다.
김일성 주석이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이 병력 지원을 약속했다고 언급하자 스탈린이 "완벽한 전쟁준비가 필수다.…이동 전투수단을 기계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귀하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대답한 내용이다.
북한이 중국, 소련의 협조를 받아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다.
또 현행 교과서는 6·25전쟁에 참가한 학도 의용군의 사례와 관련 사진을 새로 포함했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참전한 한 학도의용군이 살아서 어머니를 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포항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고 교과서는 서술했다.
대신 종전 교과서를 볼 수 있었던 스페인 화가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과 "6·25전쟁 중 점령과 수복의 과정에서 처벌과 보복이 자행돼 수많은 양민이 희생됐다"는 서술은 빠졌다.
이 그림은 학살자의 주체가 누군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미래엔의 한국사 교과서가 바뀐 것은 정부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은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하고 소년병·학도의용군의 참전에도 유의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악화한 남북관계가 한 몫했다.
2010년 3월 장병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학생 교육에서 안보의식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 6·25남침 → 6·25전쟁…'반공' 뛰어넘기
6·25전쟁 이후 역사 교과서의 변천은 큰 틀에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라는 냉전적 인식 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쟁 명칭이다.
2, 3차 교육과정기인 1963∼1981년에는 국정 교과서에서 '6·25사변'이라는 용어가 쓰였고 이후 1989년까지 '6·25남침'이 교과서에 실렸다.
사변은 상대국에 선전포고 없이 무력을 쓰는 일을 뜻하고 남침은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교과서에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과서 편수 용어로 '6·25전쟁'으로 확정했다.
이처럼 용어가 달라진 이면에는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등 한반도에 조성된 해빙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일부 학계에서는 6·25전쟁이라는 명칭은 당시 국제적 냉전 상황을 반영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전쟁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다.
과거 6·25전쟁과 떼어놓을 수 없었던 반공(反共)이라는 용어가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과정도 비슷하다.
1950∼60년대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과정은 북한을 공산괴뢰집단으로 묘사한 교육으로 일관했다.
예를 들어 1957년 발간된 교우사의 '고등국사'와 1961년 나온 탐구당의 '우리나라역사' 등은 북한을 '소련의 후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괴뢰정부'로 기술했다.
1963년 간행된 탐구당의 국사교과서는 "(소련이) 모든 애국자를 숙청하는 한편 괴뢰정권을 세우고 세계 적화의 야욕을 채우려…"라고 적었다.
그러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널리 사용해오던 북괴라는 호칭이 북한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냉전의 종언과 노태우 정부의 남북교류 정책에 힘입어 반공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 지워졌다.
이런 가운데 1993년 김일성 주석이 남침을 위해 소련을 방문했음을 증명하는 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역사 교과서는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영향으로 서술의 폭이 더욱 확대됐다.
냉전시기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6·25전쟁 때 노근리 사건 등 미군과 국군의 민간인 학살도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이 교과서 개편을 계기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일부 교과서가 좌편향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 정부 들어서도 교학사 교과서의 우편향 논란 등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고, 교육부는 2013년 11월 한국사 교과서 7종에 대해 41건의 내용 수정을 명령했다.
수정명령에는 6·25전쟁 때 민간인 학살 내용에서 국군뿐 아니라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균형 있게 포함하고 6·25전쟁의 책임이 남북한 모두에 있다는 오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월 한국사 교과서 6종의 집필진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교육부 조치가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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