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5주년> 英 예비역소장 "그때도 지금도 참전 옳았다고 믿어"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6-23 06: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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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대전 후 반전여론 속 참전한 로열퍼실리어스 연대 소대장들
"밭에서 일하던 여성 출산 도왔는데 방한해 그 아이 보고 싶어"

<6·25 65주년> 英 예비역소장 "그때도 지금도 참전 옳았다고 믿어"

1·2차대전 후 반전여론 속 참전한 로열퍼실리어스 연대 소대장들

"밭에서 일하던 여성 출산 도왔는데 방한해 그 아이 보고 싶어"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영국은 공산주의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고, 나는 영국군 장교로서 임무와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참전 결정은 옳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국군 '로열 퍼실리어스 연대 제1대대' 소대장으로 임진강 인근에서 중공군을 지척에 두고 전선을 사수한 브라이언 웹스터 예비역 소장(85)은 참전 이유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앨범들에 꼼꼼히 보관한 당시의 사진과 기록들을 기자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그에게는 6·25가 마치 엊그제 일인 듯 너무도 생생하다.

그는 "벌써 63년 전 일인데도 이상하게 당시 기억들은 또렷하다"면서 "적을 지척에 두고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앨범에는 후크(Hook) 고지 전경, 참호 건너편 적 참호에 대한 아군 공습 장면, 사람 키 높이로 파놓은 소대 참호 등을 담은 사진들과 당시 전투 일지와 소대원 배치 지점을 빼곡히 적어놓은 기록들이 들어 있었다.

영연방군 주둔 지역에 있던 후크 고지는 중공군의 진격을 맡는 주요 방어지점으로 치열했던 고지전이 펼쳐졌던 전선이었다.

웹스터 전 소장은 매우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는 게 있다면서 조그만 수첩 하나도 보여줬다. 수첩 속에는 소대원 36명의 신상정보와 습관, 취미, 특이사항, 부상 내역 등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한국군 소대원들도 있었다. 매우 유능한 소대원들이었는데 2명을 잃었다고 한다.

소대원들을 많이 잃은 '핌리코 작전'(Operation Pimlico)을 얘기할 때는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1952년 11월25일과 26일, 연대는 중공군을 급습하고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어두운 밤 기습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매복한 중공군을 만났고 백병전을 치러야 했다.

연대는 50여명의 장교와 병사들을 잃었고 이들 중에는 웹스터 소대장이 지휘하던 소대원들도 여럿 있었다. 작전 연습을 하면서 무전기를 사용했는데 중공군에 감청된 것 같다고 했다.

일선 소대장이었던 그는 "사실 전선에서 애국이나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나 이런 건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직 소대원들을 보호하고 전투에 신경이 집중됐다"면서 "하지만 목숨을 잃으면서 전장을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어렵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런 신념을 지닌 그에게 중동 사태에 대한 영국 정부 태도는 못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군사 개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 해외에서 사망한 미군이 10만명에 달한다"면서 "그런데도 미국은 의연하게 타국에서 적극적인 군사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영국군은 "젊은이들이 왜 타국에서 숨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주저하고 있다면서 어찌 보면 유엔 소속 여러 나라가 참전했던 한국은 다행스러운 사례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아일랜드에서 여단장을 맡아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나섰던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와도 싸웠다. 그에겐 한국전이나 북아일랜드 전투나 모두 내전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유혈 투쟁이 끝나고 평화를 찾은 북아일랜드와 달리 아직 남북은 통일의 길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한국전 이후 아직 한 번도 한국에 가보지 못한 그가 한국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하나 있다.

"하루는 소대원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밭에서 일하고 있던 여성이 아이를 낳는 걸 봤다. 달려가 출산을 도왔다. 남자아이였고, 곧바로 산모와 아이를 군 병원으로 옮겼다. 그 아이가 지금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꼭 한번 보고 싶다."







같은 대대 다른 소대를 이끌었던 고스패트릭 홈 예비역 소령(82)도 한국전 참전 이유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었다고 한다.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을 겪은 영국에선 '더 이상 전쟁은 그만'이라는 여론이 높았고 전쟁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웹스터 소대장과 홈 소대장 모두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가까운 가족이 목숨을 잃은 터였다. 그럼에도, 두 청년은 한국전 참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홈 예비역 소령은 "세계 많은 나라가 북한에 의해 완전 점령당할 위기에 있는 남한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야말로 국제사회가 거대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정전으로 이어졌고 남한을 지킨 것"이라며 "오늘날 발전된 한국은 세계의 노력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층 사이에서 전쟁이나 내전 참여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높고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습으로 폐허가 돼버린 후크 고지를 담은 사진 밑에 '전쟁의 황폐'라고 기록해놓을 만큼 다소 '감성적인' 면이 있는 그는 올해 4월 한국을 방문해 울창한 숲과 꽃들이 만개한 곳으로 변한 전선을 보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는 생각에 믿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6월 초 더위로 수많은 중공군 시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겨운 냄새와 수시로 찾아드는 공포감, 그리고 치열한 전투 후 끔찍한 모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면서 "당시 우리에겐 한국이 미지의 나라였지만 이젠 우리에겐 매우 가까운 나라"라고 말했다.

두 소대장은 근년 들어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을 찾고 런던에 참전 기념비를 세우는 등 '잊힌 전쟁'(forgotten war)인 한국전을 기념하고 있는데 대해 감사하다는 뜻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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