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비판' 사라진 한국 문학계, '제2의 이어령' 나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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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 '전설', 미시마 유키오 '우국' 표절 논란 (서울=연합뉴스) 소설가 신경숙이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한 부분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흡사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소설가 겸 시인인 이응준씨는 16일 한 온라인 매체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싣고 창작과비평이 출간한 신 작가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가운데 수록된 단편 '전설'의 한 대목(240~241쪽)이 유키오 작품의 구절을 그대로 따온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2015.6.17 << 연합뉴스DB >> photo@yna.co.kr |
이응준의 표절 의혹 제기부터 신경숙의 '시인'까지
문학계 치부 드러낸 일주일…찬사로 둘러싸인 '신경숙 성벽' 무너져
'저항과 비판' 사라진 한국 문학계, '제2의 이어령' 나오려면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지난 일주일은 한국 문학계를 근본부터 뒤흔든 시간이었다.
소설가 이응준 씨가 제기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신경숙에 대한 표절 의혹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넘어서 돈과 일부 문학공동체 권력에 사로잡힌 우리 문학계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나아가 주요 출판사와 결합해 '반체제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을 외면하고 주례사 비평에 치중하던 평단에도 거센 자성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 한 문인의 용기로 15년간의 해묵은 논쟁 종결 = 신경숙의 1996년 작 단편 '전설'이 일본의 대표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소설 '우국'과 유사하다는 지적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24일 문단에 따르면 문학평론가 정문순 씨는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95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정 평론가는 "일제 파시즘기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해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 평론가의 주장은 당시 문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 지성사 등 유수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신경숙에게 평단은 비판의 펜촉을 들이대지 못했다.
표절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신경숙은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찬사에 가까운 비평에 둘러싸인 '스타작가'로서 군림했다.
그렇기에 이응준 씨가 15년 뒤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하는 일이었다.
이응준 씨는 표절 의혹을 제기한 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에서 어느 문인도 이 문제에 시원스럽게 나서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돼버려 자신의 문단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 글이 나오자 창비는 즉시 신경숙을 두둔하고 나섰고, 신경숙 역시 '우국'을 읽은 적도 없다며 표절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5년 전과 달랐다.
누가 봐도 유사한 구절에 대중은 창비와 신경숙의 해명을 수긍하지 못했고, 다른 작품에서도 잇달아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경숙을 둘러싼 견고한 성벽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 문학계에 이는 자성의 바람…"문학정신의 본령은 비판" = 신경숙 사태는 작가 개인을 넘어 문학계 전반의 문제를 보여준 사건으로 여겨진다.
지난 23일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개최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2000년부터 심심찮게 지적돼 온 표절 의혹에도 신경숙이 '거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상업 출판사와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2000년대 문학의 실패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문단의 패거리화와 권력화, 이에 따른 비평적 심의기준의 붕괴와 독자의 신뢰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평적 개입이 사라지고 이른바 '돈이 되는 작가'에게 일방적 찬사를 보내는 오늘날 한국 문단의 현실에 대한 뼈아픈 자성도 나왔다.
원로 문학평론가이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은 1956년 당시 문학계를 이끌던 거장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문학평론집 '저항의 문학'을 내놓으며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1956년 5월 6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우상의 파괴'에서 '우상화된 문단 원로을 파괴하고 그 숭배자들은 각성하라'는 통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어령 전 장관은 2009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0년 전 어려운 시절에 젊은 신인 평론가가 기성 문단과 타협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와 출판사의 도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이 평단에서는 제2, 제3의 이어령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이명원 교수는 "현재의 문학제도는 비평적 담론과는 완전히 무관한 산업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반체제 지식인은 존재 불가능한 공간"이라며 '집 나간' 한국문학의 '귀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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