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 합법화한 21번째 국가…공화 잠룡들 비판 대선쟁점 부상
미국 전역서 동성결혼 합법화…공화 반발로 논란은 계속(종합)
대법관 9명 중 찬성 5명, 반대 4명…로버츠 대법원장 반대표 행사
동성결혼 합법화한 21번째 국가…공화 잠룡들 비판 대선쟁점 부상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이 26일(현지시간) 미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텍사스 주(州)를 비롯해 동성결혼을 금지해 온 14개 주에서도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남녀 이성 간의 결합'으로 구성된 전통적 부부에게 제공하는 것과 똑같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14개 주의 동성 커플은 약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워싱턴D.C.와 36개 주에서만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 역시 동성 커플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애플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이미 사실상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기업은 동성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 대법원의 이번 동성결혼 합헌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대법원은 앞서 2013년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이성 간 결합'이라고 규정해 동성 커플이 연방정부에서 부부에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한 1996년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동성결혼을 금지해 달라'며 5개 주에서 제기한 상고를 각하함으로써 이들 지역에서 동성결혼 허용의 길을 텄다.
동북부의 매사추세츠 주(州)가 2004년 5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2000년대 말까지 동성결혼을 인정한 주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나, 2013년 대법원 결정 이후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2013년 8곳, 2014년 16곳에 이어 현재 36개 주로 늘어났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54)이 지난해 10월 말 자신이 게이라고 공개로 선언하는 등 미국 사회의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비영리단체인 공공종교연구소(PRRI)가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대법원의 합헌 결정을 전망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이민 물결로 백인·앵글로 색슨족·프로테스탄트(WASP)라는 미국 인구의 주류 지형이 바뀐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은 히스패닉계가 대선 판도를 좌우할 정도로 미국 내 인구 비중이 17.4%(5천540만 명)로 크게 늘어난 상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성소수자 보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 온 것도 대법원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평소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정책을 역설해 왔으며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 LGBT에 대한 보호를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국무부 차원에서 LGBT 성소수자 특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 결정 직후 트위터에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환영의 글을 올린 데 이어 곧바로 특별 성명을 내고 "미국의 승리다. 이번 결정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결정 직후 '세계 게이들의 수도'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미국 도시 곳곳에서도 환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번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에도, 당분간 동성결혼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에 찬반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법원 최종 결정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이외에 진보와 보수 성향의 대법관 8명이 각각 찬성 4명, 반대 4명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데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공화당 추천 인사이면서도 전날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해 예상 밖의 합헌 결정을 내렸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반대 소수의견을 내면서 "이번 결정은 헌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밝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 4인은 동성결혼 인정 여부는 각 주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공화당 대선후보들도 일제히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제국적 대법원'이라는 격한 표현도 나왔다.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성명에서 "남녀 간의 결혼에 대한 규정은 신이 만든 것으로, 어떤 속세의 법원도 이를 변경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도 "오직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결혼의 재정의'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양분된 목소리를 냈다"며 5대 4로 갈린 대법원 결정을 거론한 뒤 "제국적 법원의 (합법화) 결정을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사법부의 폭압에 저항하고 거부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도 "대법원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주 정부가 계속 결혼의 정의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수정헌법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최고경영자(CEO)와 릭 샌토럼(펜실베이니아) 전 상원의원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다만,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벤 카슨은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존중 또는 지지의 입장을 보여 다른 공화당 후보들과 대조를 보였다.
공화당 잠룡들이 일제히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을 비판하면서 이 문제는 2016년 미 대선판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동성결혼을 지지해 온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과, 보수 결집을 야기해 공화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상반된 분석이 함께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008년 대선 경선 당시에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최근에는 "동성결혼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며 지지로 급선회했다.
한편, CNN 방송을 비롯한 미 언론은 미국이 전국적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21번째 국가가 됐다고 전했다. 동성결혼은 네덜란드가 20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허용했다.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갖는 위상을 감안하면 미국의 이번 동성결혼 합법화 조치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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