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 드러난 '초조한 초보장관 힐러리'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키신저는 국무장관 시절 닉슨 대통령을 날마다 봤다는데 같은 국무장관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을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나는 뭔가."
미국 국무부 웹사이트에 게재된 2009년 3월부터 9월까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초보장관으로 초조한 시절이 잘 드러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12월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의 인터뷰에 동석하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가 키신저 전 장관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관계를 고려할 때 소원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자기 보좌관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언해야 하는 게 올바른 국무장관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백악관에서 자신만 제외하고 각 부처 장관들을 불러모아 국무회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6월 보좌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국무회의를 한다고 라디오에서 보도하는데 사실이냐"며 "내가 안가면 누굴 보내느냐"고 물었다.
사실 그 회의는 국무회의가 아니라 그 아래 관료들이 실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가 취소된 지 모르고 백악관을 찾았다가 퇴짜를 맞는 사건도 이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6월 12일 "10시 15분 회의에 도착했는데 회의가 없다고 한다"며 "벌써 두 번째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보좌진에 물었다.
한 보좌관은 회의시간이 확정됐다고만 알았는데 변경된 사안이 전달되지 않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클린턴 전 장관과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에서 격전을 벌인 사이인 터라 백악관과의 관계는 초기에 소원한 것으로 관측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 측근인 데이비드 액설로드조차 클린턴 전 장관이 사용하는 개인 이메일을 모르고 있었다.
이메일에서는 클린턴 전 장관의 보좌관이 이메일 주소를 액설로드에게 알려줘도 괜찮은지 물을 정도로 소원했던 백악관과의 사이가 드러났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람 이매뉴얼도 비슷한 허락을 얻고 나서야 클린턴 전 장관과 이메일을 나눌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을 2009년 11월 19일 갑자기 방문했을 때는 옷차림을 칭찬하는 대변인의 말에 흐뭇한 마음을 담은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아프간 카불에 도착하는 사진이 특이한 코트 때문에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1면을 장식하고 호감도를 묻는 네티즌 투표까지 온라인에 열렸다고 대변인은 그에게 전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고맙다"며 "이 코트를 2003년 카불에서 샀는데 코트에도 오랜만에 고향 갈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팩스가 고장 나 수리 방안을 고민하는 내용, 잘 때 양말을 꼭 신어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보좌관에 대한 할머니의 충고 등도 있었다.
이메일에 대한 미국 현지언론들의 인상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각기 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임기 첫해이던 당시 클린턴 전 장관이 각료진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분투하던 모습에 초점을 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클린턴 전 장관이 국내 정치 현안에 매우 관심이 많고 우군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대중적 이미지를 관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인상적인 이메일을 각각 13건, 12건 골라 소개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일상을 보여주는 짧은 이메일이 주를 이뤘다.
이번에 대중에 전해진 3천여 쪽에 달하는 이메일 2천여 건은 최근 연방 법원의 결정에 따라 공개됐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장관을 지내던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해 공무를 수행한 사실이 드러난 논란이 일었다.
공화당은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무장세력에 주리비아 미국대사가 살해되는 사태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연관지어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외교정책의 실패, 테러 위험에 대한 대비 수준이 낮았다며 이메일의 완전한 공개를 요구해왔다.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은 오는 내년 1월까지 매달 30일 순차적으로 국무부 웹사이트에 게재된다. 보호해야 할 사생활이나 안보와 관련된 기밀이 담긴 이메일은 국무부 심사를 거쳐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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