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교훈> ① '흔들림없는' 컨트롤타워 세워야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7-08 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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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당국 사령탑 계속 변경…과감한 판단 못한 사이 메르스 확산
질병관리본부 독립시켜 예산·인사권 부여해야…청·처 독립論 '솔솔'
32명 뿐인 역학조사관…인원 늘리고 교육 강화해 '역학조사 예비군' 육성해야

<메르스 교훈> ① '흔들림없는' 컨트롤타워 세워야

방역당국 사령탑 계속 변경…과감한 판단 못한 사이 메르스 확산

질병관리본부 독립시켜 예산·인사권 부여해야…청·처 독립論 '솔솔'

32명 뿐인 역학조사관…인원 늘리고 교육 강화해 '역학조사 예비군' 육성해야



<※편집자주 = 5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된 메르스 사태는 한달 반만에 186명이 넘는 환자와 33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상처를 안겼습니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컨트롤타워를 수차례 바꾸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취약한 국내 의료체계의 후진성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가 병원내 감염으로 발생함에 따라 병원들의 감염관리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고 시장통같은 응급실 실태, 간병·문병 문화 등도 바이러스 확산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협력체계 및 정보공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이러스 확산세를 조기에 막지 못했습니다. 뒤늦은 정보공개로 국민 사이에 괴담이 확산하고 이른바 '메르스포비아'가 날개를 달고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 휴업사태가 속출했고 기업활동 위축으로 생산과 소비가 줄어 국내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메르스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메르스 특집 기획물 12꼭지를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방역은 흔히 전쟁으로 비유된다. 방역 현장에도 전사가 있으며 격전이 펼쳐진다. 적(敵)인 바이러스와 싸우는 곳에는 전선(戰線)이 있다. 저지선이 뚫리면 후방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니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는 하루 하루가 전쟁이다.

제대로 대비를 못한 상황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는 전쟁이 터지자 방역 당국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대로된 장수가 없었으며 그나마 자꾸 바뀌기도 했다. 장수의 부재도 문제였지만 싸움에 나설 전사들의 수나 전투력이 부족한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던 메르스 사태가 종식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을 관리하고 통제할 정부 조직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방역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를 확 바꾸는 한편 감염병에 맞설 인력을 크게 늘려 '제2의 메르스사태'를 막자는 것이다.







◇ 권한도 인력도 없는 질병관리본부…보고하느라 바쁜 본부장

이번 메르스 사태의 초반 컨트롤타워는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이었다. 양 본부장은 5월 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8일뒤인 28일까지 전면에 나섰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오송과 복지부가 있는 세종시, 서울을 오가며 보고하기에 바빴다. 결국 초기에 유행을 막는데에는 실패했다.

방역당국이 쳐놓은 격리망 밖에서 환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차리고 사령탑에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을 앉혔다. 대책본부의 본부장은 닷새 뒤인 6월 2일부터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으로 다시 바뀌었다. 같은 날에는 최경환 총리대행이 관계부처장관회의를 처음 열었다. 정부는 6월 8일에는 장옥주 차관과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공동팀장을 맡는 민관합동TF를 꾸리기도 했다.

이처럼 메르스 사태 초반 컨트롤타워가 자주 바뀌면서 혼란이 오히려 가중됐고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컨트롤타워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그만큼 전문성은 떨어졌고, 이는 방역 현장에서의 장악력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컨트롤타워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권한과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명확지 않았다"며 "특히 방역 현장에서는 전체를 총괄해 코디네이션(조정)하고 책임을 지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질본 따로, 복지부 따로, 지방자치단체 따로였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고위 공무원 출신의 한 인사는 "메르스 사태를 헤쳐나갈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었다"며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며 마치 초등학생이 담임선생님 바라보듯 윗선의 결정만 기다리는 사이에 방역망은 뚤리고 메르스는 확산됐다"고 말했다.





◇ 예산권·인사권 없는 질본…질병관리청 격상론 '솔솔'

메르스 방역의 최전선에 있었던 질병관리본부가 이번 사태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의 배경에는 복지부 산하기관이라는 조직 구조상의 한계가 있다.

복지부 산하기관이라서 예산권을 행사하고 적소에 인사를 할 수 없어서 스스로는 감염병 대비 체제를 만들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인력 구성과 예산 상황을 보면 명확해진다. 질병관리본부는 산하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검역소를 제외하면 3센터(감염병관리센터·질병예방센터·장기이식관리센터) 14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다.

5월말 현재 정규직 직원이 164명이며 비정규직은 이보다 많은 269명으로 구성돼있다. 업무가 늘어나면서 인력 수요가 증가했지만 정규직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되자 비정규직 채용을 늘렸던 것이 이 같은 '가분수' 상황을 만든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올해 예산은 5천664억원이다. 인건비 지출이 많은 편인 국립보건연구원, 국립검역소 관련 예산도 포함돼 있어 이 중 감염병 관련 예산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질병관리본부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 정규직 인력이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관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아무래도 업무 실행력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 많으니 지휘부의 조직 장악력은 떨어지고 업무 연속성에서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상황이니 감염병 분야 정규직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렵다. 의사출신 정규직 인력은 정규직 164명 중 13.4%인 22명 뿐이다.

질병관리본부장 출신으로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플루를 현장에서 겪은 전병률 연세대 교수는 "식약처, 기상청, 방위산업청은 해당 분야가 특화된 전문영역이 담당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판단이 있어서 별도의 청이나 처로 독립한 것"이라며 "감염병 관리와 방역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질병관리본부를 예산과 인사 권한을 갖고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복지 치중한 보건복지부…'보건 2차관' 도입 필요

메르스 방역의 실패를 경직된 관료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보건분야 전문 지식이 부족한 행정 관료들이 빠른 의사결정을 못하는 사이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복지와 보건의료를 총괄하는 부처이긴 하지만 복지부 직원 740명 중 의사출신은 18명 뿐이며 과장급 이상에는 5명밖에 없다. 의사출신 인력이 부족하니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료관련 부서장도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이 맡고 있다.

복지부의 올해 전체 예산은 53조4천억원 규모며 이 중 보건의료예산(건강보험 제외)은 4% 수준인 2조3천800억원에 불과하다.

전병률 교수는 "지금의 복지부는 복지와 보건의 쌍두마차가 아니라 복지의 외발 자전거에 작은 혹이 달려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며 "이제와서 쌍두마차 체제를 만들기에는 한쪽 업무가 너무 비대해졌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장관 아래에 보건을 담당하는 차관을 따로 두는 '제2 차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감염병 방역 체계 개편과 복지부 내 보건의료 분야를 강화하는 것은 서로 별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윤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지만 보건의 전문성과 복지의 전문성이 다른 만큼 보건을 담당하는 복수차관제를 복지부에 도입하는 게 맞다"며 "의사 출신이 꼭 전문성이 높기 때문에 정책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외국에 비하면 복지부에 의사수가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감염병 전파 상황에는 불확실성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의사결정을 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의사 출신 전문직 관료조차 관료주의에 젖어 있어 그러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역학조사 예비군 육성…비상시 동원 가능한 전문 인력풀 확보해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첫 환자가 발생한 다음날인 5월 21일 브리핑에서 1번 환자와 접촉한 64명을 자가격리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강력하고 광범위한 범위에서 접촉자를 격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8일부터 추가 환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같은 병실이 아닌 다른 병실에서도 환자가 나왔고 역학조사에서 발견해내지 못한 환자가 일상생활을 하다가 중국에 출장을 간 사례까지 등장했다. 그 사이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퍼져나갔고 또다른 집단 발병 병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역당국의 부실한 역학조사는 이번 메르스 사태의 초반 확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배경에는 역학조사관의 수가 적은데다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현재 방역당국에서 활동하는 역학조사관은 32명뿐이다. 이 중 2명만 질병관리본부 소속이며 나머지 30명은 군복무 대신 일하는 공중보건의다.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데다 대부분 역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까닭에 촘촘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국회는 지난 26일 일명 '메르스법'(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역학조사관 수를 64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역학조사관 인력풀을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은 "훈련된 정규 역학조사관을 인구 50만명당 1명 수준인 100명으로 늘려 초기단계의 역학조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교수는 "미국에서는 역학조사관이 2년간 교육을 받은 다음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각자 일을 하다가 비상시에 동원된다"며 "비상시에 현장에 동원할 훈련된 인력풀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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