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중심 '국가재난대책 병원집단' 설립 주장도

<메르스 교훈> ④ 공중보건 최전방 공공의료 '튼튼히'
한국 공공의료 인프라 OECD국가중 최하위…시설·인력 확충 시급
국립중앙의료원 중심 '국가재난대책 병원집단' 설립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창 고조되던 지난 6월 초순. 초기 대응 실패로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던 방역 당국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서려다 또 한 번 수모를 겪었다. 이른바 '메르스 치료 지역거점병원' 지정 취소소동이었다.
방역 당국은 6월 10일 지역별로 16개 대학병원과 민간병원을 '메르스 치료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일부 병원이 메르스 환자를 치료할 시설을 미처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자 부랴부랴 취소하고 다른 의료기관으로 대체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메르스 치료병원 명단 가운데 부산대병원, 강원대병원,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은 음압 병상이 아예 없거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음압 병상은 병실 안팎의 기압 차를 이용해 공기가 항상 병실 안쪽으로만 흐르도록 해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특수병상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 격리 치료에 필수적인 시설이다.
부산대병원은 국비지원으로 음압 병상을 26개 짓고 있지만 8월 완공 예정이었다. 방역 당국은 동아대병원으로 메르스 치료병원을 급히 바꿨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지방자치단체나 해당 병원과 긴밀하게 공조하지 않고 '묻지마 선정'을 한 결과였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을까? 우리나라는 국민보건과 건강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의료기관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동원할 수 있는 공공의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한국 보건의료의 서글픈 현실이 가져온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이 일은 메르스 사태 같은 공중보건위기에 취약한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줬다.
메르스 사태 같은 공중보건위기의 재발을 막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성을 잃어버린 한국 의료체계를 수술해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 의료공급 불균형 심화 속 빈약한 한국 공공의료 인프라
이번 메르스 사태 과정에서 삼성서울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전국으로 메르스를 퍼뜨리는 진원지로 변해버린 데서 잘 드러나듯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는 입원환자를 기준으로 의원(입원환자 최대 29명 이하), 병원(30명 이상), 종합병원(100명 이상)으로 나뉜다. 문제는 종합병원 중에서도 입원환자 3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에 의료서비스 수요가 집중하면서 의료 공급의 지역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 특히 KTX 등 교통발달에 힘입어 주요 5대 대형병원인 '빅5'(서울대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에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이들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자뿐만 아니라 외래환자마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2011년 복지부 자료를 보면, 이들 대형병원은 전체 진료비의 36.9%를 외래환자 진료를 통해 벌어들였는데, 이런 외래진료비의 32.5%는 동네 병의원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가벼운 질환진료로 올린 수입이었다.
이처럼 대형병원 등으로 의료자원과 의료서비스 이용이 쏠리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농어촌 등 비수도권의 의료기반이 허물어지면서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일부 의료취약 지역주민은 응급의료와 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동네의원 등 1차 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은 설 땅을 잃고 고사위기에 처했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공공의료 비중이 가장 낮다. OECD 회원국의 공공병상 비율(2013년 기준)은 평균 75.1% 수준이고, 의료 영리화의 최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조차 24.5%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9.5%에 불과하다.
◇ 국가방역 실행기관으로 공공의료기관 정비 강화 시급
감염병 방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제 대응이다. 그러려면 신종전염병이 가져올 수 있는 의외성에 주목하면서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역대책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메르스 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일선에서 움직여야 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 장비를 우선으로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일찌감치 2013년 회계연도 결산분야별 분석보고서에서 보건당국이 중장기적 시각에서 1차 의료와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는 쪽으로 재정을 우선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감염병 방역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위상을 재정립해 국가재난 때 실행기관으로서의 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정재수 정책국장은 "국립중앙의료원에 감염병전문센터를 설치해 국가중앙병원과 재난병원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한국원자력의학원, 경찰병원, 교통병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들을 묶어 국가재난대책 병원집단을 수립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또 국내 공공의료의 골간을 이루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을 더욱 보강하고, 이들 공공병원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제도적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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