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긴장 놓을 수 없는 하루하루 버틴 힘은 '팀워크'

<메르스 교훈> ⑥ 사투 벌인 의료진…빛나는 직업정신
만성피로와 불안감에 탈진…'메르스 온상' 주홍글씨도 감수
한시도 긴장 놓을 수 없는 하루하루 버틴 힘은 '팀워크'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대유행 할 것만 같았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데에는 목숨을 걸고 메르스와 싸운 수많은 의료진의 헌신이 큰 몫을 했다.
이들은 답답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환자를 치료하다 급기야 탈진해 쓰러지고, 며칠씩 가족과 떨어져 병원에 격리돼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메르스 최전선을 지켜온 전사들이다.
인력과 장비 부족, 안전조치 미흡 등에 따른 불안감을 이겨내야 했고 마치 자신을 메르스 감염자 취급하는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온몸을 던져 메르스에 맞섰다.
◇ "동료가 기침만 해도 아찔"…보라매병원 감염관리실장의 한 달.
"요즘도 퇴근해서 집에 가면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지고 샤워를 마친 뒤에야 가족들과 마주하죠."
서울시 보라매병원의 박상원 감염관리실장은 메르스 확진 환자를 받기 시작한 지난달 5일부터 약 2주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보라매병원은 정부가 지정한 메르스 확진 환자 집중치료기관이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자신을 포함해 고작 2명이어서 처음에는 둘이서 번갈아 야간 당직을 서면서 메르스 환자들을 관리했다. 옷가지 등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가족들이 병원으로 가져다줬다.
그렇게 2주가량 지내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피로가 쌓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흡기내과의, 일반내과의, 4년차 전공의 등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당직자가 7명으로 늘어난 덕분에 박 실장은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보라매병원 의료진은 메르스 의심환자도 아닌 실제 확진환자를 매일 직접 마주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의료진이라고 불안하지 않을 리 없다.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압박감도 만만치 않다.
박 실장은 "나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를 겪은 터라 좀 낫지만 이런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간호사들은 늘 불안해한다"면서 "경험자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다른 이들이 안심하고 따라올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역복은 이들 의료진에게 이제 일상복이 됐다.
방역복을 입으면 공기와 열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아 금세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다. 몸에서 열기가 올라오면서 보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다.
입에 완전히 밀착되는 마스크는 호흡조차 어렵게 한다. 박 실장은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진료하면 20분 이상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까딱하다 의료진 중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전체가 격리돼야 한다는 점은 늘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박 실장은 "상황이 오래가다 보니 의료진 중에는 당연히 기침하는 사람도 있고 목이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이도 생겼다"며 "즉각 검사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런 순간들이 매번 아찔했다"고 털어놨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팀워크였다.
박 실장은 "병원은 본디 의사와 간호사, 관리자들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구조라 전체가 한팀인 듯 돌아가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이번 상황에서는 격리병동 출입을 철저히 감염관리실장 통제 아래 두고 매일 회의를 열어 현장 상황을 서로 공유하는 등 나름대로 팀워크를 구축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한 달가량을 보내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폐 기능을 대신하는 에크모 장비까지 부착한 중환자를 치료하고, 무사히 살아 퇴원한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서 의료진도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박 실장은 "우리끼리 회식한 자리에서 '정말 뭔가를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는 식의 긍정적 반응들이 많이 나왔다"며 "확진 환자가 입원했다가 치료받고 퇴원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 격무에 탈진·곱지 않은 주변 시선…일선 의료진의 애환
14일간 코호트(감염환자 발생 병동을 의료진과 함께 폐쇄하는 조치) 격리돼 환자를 돌봐야 했던 대전 을지대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가 쓴 일기는 일선 의료진의 애환을 눈물겹게 보여준다.
"급하게 근무자 수를 맞춰 주간 근무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에볼라 때 준비해둔 노란 방호복을 가져와 입었고, 우리는 30분 만에 탈진했다. 온종일 땀에 젖어 붙어 있던 속옷은 몸을 감싼 모양 그대로 발갛게 부어올라 쓰라려 온다. 바깥공기가 살에 닿으니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동료 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함께 붙잡고 울었다."(6월9일 일기 중)
국립중앙의료원처럼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메르스 환자만 전담 치료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장기간 격무로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하며 진료하다 탈수 증세로 쓰러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인력과 보호장구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진이 따로 묵을 숙소조차 없어 만성적 피로와 불안함 속에서 근무한다고 일선 의료인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서운했던 것은 마치 자신과 가족을 '전염병의 온상'처럼 취급하며 '주홍글씨'를 붙이는 주변 시선이었다.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다른 학부모로부터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마라"는 전화를 받거나 배우자한테서까지 "자녀에게 가까이 가지 마라"는 말을 들은 의료진들은 억울함을 내보이지도 못한 채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감염 환자 치료에도 정신이 없을 판인데 온갖 서류작업에 시달리고 각종 행정절차에 구속돼야 하는 점도 만만찮은 스트레스다.
박상원 실장은 "현장 상황 대응은 이제 그런대로 할 만한데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각종 공문서를 보내고 의원실 요구자료까지 만들어 제출하는 등 업무가 많아 환자를 볼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심지어 여러 관계기관과 병원 간 창구를 일원화해 달라는 부탁도 현장에 있는 우리가 먼저 했을 정도"라며 "현장 상황을 잘 모르고 행정절차만 따지는 모습도 2009년 신종플루 사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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