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일반인도 도움의 손길…'국민 모두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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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리해제 주민들 "위아랫집인데 이게 얼마만이야" (순창=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14일동안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가 19일 풀려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에서 주민 이성자(57)씨와 최복희(68)씨가 얼싸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위아랫집에 살며 자매같이 지냈는데 14일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이제 살 것 같다"고 말했다. 2015.6.19 doin100@yna.co.kr |
<메르스 교훈> ⑪ 메르스 물리친 공동체 정신
"국민 건강·안전 위해"…순창 장덕마을 주민들 똘똘 뭉쳐 '통째 격리' 감수
정부·지자체·일반인도 도움의 손길…'국민 모두의 승리'
(전국종합=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지만 헌신적인 공동체 정신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공동체 정신이 무서운 기세로 번져가던 메르스를 잠재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구 3만명의 조용한 농촌지역인 전북 순창군을 메르스가 덮친 것은 지난 5월 하순.
순창 장덕마을 A(72·여·사망)씨가 메르스의 첫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 3일간 치료를 받고 고향집으로 내려오면서다.
1번 확진자와 같은 병동을 썼던 A씨는 집에 내려온 뒤 14일 만인 6월 4일 고열 증세를 보였고 이틀 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메르스에 걸렸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A씨는 확진 판정을 받기 전 보름 가까운 기간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회관에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자유롭게 접촉했다. 순창읍내에 있는 병원도 거리낌 없이 이용했다.
가족과 마을 주민의 주장을 빌리면 정부로부터 격리 통보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A씨와 접촉한 사람은 마을 주민 125명과 의료진, 병원 환자 등 모두 213명이나 됐다. 이에 따라 확진 판정이 나던 날 자정을 기해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
마을 입구에는 방역복으로 '중무장'한 경찰관과 방역요원이 배치됐고 마을 주민의 출입은 전면 금지됐다.
군사작전처럼 전격적으로 진행된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마을 전체의 출입이 통제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과 동시에 순창은 아무도 발길을 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섬이 돼버렸다. '장수 마을', '청정 고장'이라는 이미지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주민들은 팔자에 없는 감옥생활에 들어갔다. 14일 기한이었지만 도중에 다시 환자가 나오면 언제 해제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였다.
무엇보다도 농사일이 걱정이었다.
밭에는 막 수확이 시작된 오디가 검게 익어가고 있었다. 당장 따지 않으면 모두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복분자와 블루베리, 매실 수확 철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수확해도 주문이 딱 끊기면서 창고에서 그대로 썩어나가기 일쑤였다.
공사현장이나 식당에 나가 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민들은 당장 먹고살 방법이 막막했다.
매일같이 시내 병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들은 꼼짝없이 보건소 직원이 타다 주는 약 하나로 버텨야 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 나갈 수도 없고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모두 건들기만 하면 금방 터질 것처럼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러나 최악의 순간에 공동체 정신은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주민들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우리가 갇혀 있는 것 아니냐'며 서로를 격려했다.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던 이웃과의 발길도 스스로 끊은 채 독하게 격리생활을 이어갔다.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14일을 견뎌냈고 이런 헌신적인 노력 덕에 단 한 명의 추가 환자도 발생하지 않은 채 격리는 끝이 났다.
하나같이 "모범적이며 헌신적인 대처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종섭 행장자치부 장관은 장덕마을에 따로 편지를 보내 "모든 국민이 건강한 시민의식으로 함께할 때 메르스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줬고 장덕마을 주민의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메르스를 이겨낸 힘"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장덕마을의 승리는 국민 모두의 승리이기도 했다.
자칫 흔들릴 수도 있는 주민들의 마음을 다잡게 한 것은 국민 모두였기 때문이다.
격리가 시작된 뒤 마을에는 1억1천만원어치가 넘는 구호품이 답지했다. 라면과 쌀, 빵, 생수, 김치, 삼계탕, 손 소독제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면역력을 높이는 데 좋다며 매실과 꾸지뽕 진액, 전복, 쇠고기를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다.
행정자치부와 전북도청, 순창군청 등 공공기관들은 거의 매일같이 직원들을 보내 농사일을 거들었고 국회는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주민들을 응원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선플'이 넘쳐났다.
마을 부녀회장 신정순(68)씨는 "이런 물심양면의 지원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답답한 생활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순창 장덕마을의 높은 공동체 정신은 또 다른 격리 마을인 전남 보성군 주음마을과 충북 옥천군, 창원 SK병원 등지로 이어졌다.
특히 창원 SK병원은 입원했던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자 선제적으로 병원 전체를 코호트(환자 발생 병동을 의료진과 함께 폐쇄해 운영) 격리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역학조사팀이 일부 병실만 폐쇄해도 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우리 병원 때문에 메르스가 퍼지면 전체 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병원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렸고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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