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부족→불신→극단적 이기주의…소통으로 풀어야"
<메르스 교훈> ⑨ 유언비어는 또 다른 전염병
황당하고 공포감 주는 괴담 나돌아…성숙한 시민의식 필요
"정보 부족→불신→극단적 이기주의…소통으로 풀어야"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이대희 채새롬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으로 유포된 유언비어였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이기주의도 문제였다.
일부 사람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뜨리거나 보건 당국의 격리 조치를 따르지 않고 돌발 행동을 해 메르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이러한 행태는 부족한 정보에서 맞닥뜨리는 불안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일탈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따라서 통제나 처벌보다는 소통을 밑거름으로 시민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바셀린'이 메르스 막는다?…황당한 '괴담'
메르스 발생 초반 SNS에 퍼진 대표적인 유언비어는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메르스를 막을 수 있다'는 소문이었다.
'중동 출신 전문가'라는 부정확한 출처를 달고 퍼진 이 소문은 '지용성인 바셀린이 수용성인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다'는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여져 널리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었지만 바셀린 매출이 2배 이상 껑충 뛸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나왔으니 가지 마라'는 소문도 관련 정보가 부족했던 메르스 발생 초기 널리 퍼졌던 괴담이었다.
이러한 유언비어가 일부 맞기도 했지만, 상당수 부정확한 정보가 SNS를 타고 무분별하게 유포돼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만 키웠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어 '일단 믿고 보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메르스 공포가 실체보다 더 부풀려진 것이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 수준을 넘어서는 전파력은 갖지 못해 대유행의 가능성은 적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유언비어에 묻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메르스 관련 병원이 아닌 동네 병원에까지 환자가 뚝 끊겼고 음식점, 놀이동산, 쇼핑몰 등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다중 이용공간에서 한동안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다.
노이로제에 가까운 막연한 공포감은 극심한 내수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정부는 11조원이 넘는 '메르스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 격리 대상자가 골프 치고, 확진자는 '병원 탈출'
메르스 유행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행동으로 불안감을 높인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난달 2일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해 서울 자택에서 격리 중이던 A(51·여)씨가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손가락질을 받았다.
경찰의 위치 추적 끝에 전북 서해안의 한 골프장에서 발견된 A씨는 12시간 이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주위가 발칵 뒤집혔다.
병원 탈출 소동을 벌인 메르스 확진자는 일대를 감염의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141번 환자는 지난달 12일 구급차와 의료진이 갈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어기며 택시를 타고 강남세브란스병원에 갔다.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던 이 환자는 격리된 선별치료실의 걸쇠를 부수고 탈출해 또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현행 법률은 격리 처분을 거부한 사람에게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일탈 행위가 이어지면서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받기도 했다.
메르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닥칠 감염 위험도 잊고 치료에 매달리는 의료진에게 '주홍글씨'를 찍는 차별의 시선도 있었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수원의 한 사립유치원이 학부모가 메르스 집중치료병원 간호사라는 이유로 간호사 자녀의 등원을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 메르스 사태, 시민의식 일깨우는 계기돼야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난 개인적 일탈 행위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홍주현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메르스에 대한 불안이 생겼다"며 "불안이 생겼을 때 그 불안을 말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심리적인 요인이 작동해 괴담이 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문제는 개인의 의견이 SNS와 인터넷 등을 통해 공공의 의견으로 퍼지기 쉬워졌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의견을 일부 언론이 사실 확인 없이 기사화해 유언비어가 '의제'처럼 퍼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될 수 있는 전염병 문제에 관심이 쏠린 상태에서 정보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여기서 생긴 불신으로 일부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일탈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관규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보를 통제하면서 무조건 처벌만 하겠다는 입장은 정부의 불신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오히려 건전한 소통이 시민의 반성과 자제를 유도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번 메르스 사태로 생긴 혼란이 오히려 시민의식 성숙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일탈 행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시민의식이 성숙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며 "시민들이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고 적응하면서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시민성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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