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엔 환자만'…문병문화·간병제도 개선
병상당 면적·간격 늘려 병원내 감염 막아야
<메르스 교훈> ② '닥터쇼핑' 그만…동네병원을 주치의로
1차 의료 강화해 '종합병원 쏠림화' 차단
'병실엔 환자만'…문병문화·간병제도 개선
병상당 면적·간격 늘려 병원내 감염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내외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한 문제점은 '한국의 특수한 병원 문화와 의료체계가 메르스를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높은 의료 접근성을 갖췄다고 자평했지만 민간 병원 중심의 의료시스템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감염병 예방 체계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노출했다.
아울러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응급실 과밀화 문제 해결, 추진 속도가 늦었던 간병제도 개선 등도 '제2의 메르스'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 '닥터 쇼핑' 막으려면 '맞춤형' 1차 의료 강화가 먼저
정부가 초기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통제력을 잃었던 큰 이유는 대다수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최소 2곳 이상의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학조사에 투입될 인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정부는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이 어디인지 파악하는데 급급했고 선제적 방역 조치는 불가능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알고 빠른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는 합리적 선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메르스 예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같은 '닥터 쇼핑' 문화를 막으려면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1차 의료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
동네 병원이 대형 병원에서 해 줄 수 없는 맞춤형 주치의 역할을 자처하고 지역사회에서 신뢰 수준을 높여 '상급병원 쏠림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한 양상을 뚜렷하게 보여줬다"며 "병명과 상관없이 모든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리면서 사태가 확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부회장은 "진료 회송 수가 등을 도입해 환자 상태에 따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급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고 현재 52개에 불과한 의원 역점 질환도 100개 정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도 지난달 25일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토론회를 통해 "1차 의료 보장성 강화를 위해 환자 상담과 사례 관리 등에 대한 급여를 확대하고 일차 의료기관의 본인부담률을 대폭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병원에는 환자만'…문병문화·간병제도 함께 바꿔야
병원이 '메르스 확산 공간'으로 변질된 것은 일반인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병원 문화도 한몫했다.
실제로 지난 6일 기준 메르스 확진자 186명 가운데 환자 가족이나 가족 이외의 문병객 등 방문객은 64명으로 전체 확진자의 34.4%를 차지했다. 이는 의료진 등 병원 관련 종사자 환자(39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메르스 확진자 가운데 환자 가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대형 병원은 '환자 1명당 보호자 1명', '병실 면회 시간 제한'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응급실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방문 명부를 작성하도록 하는 '응급실 보호자 및 방문객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앞으로 의료법을 개정해 이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아픈 가족은 구성원이 돌봐야 한다'는 간병 제도도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안형식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보호자 상주 병원의 요로감염, 병원 내 감염, 병원 내 폐렴발생 건수는 보호자 비상주 병동보다 각각 4.36배, 2.87배, 6.75배 높았다. 보호자가 병간호를 하면 병원 내 감염률이 더 높다는 의미다.
보건 당국도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2013년 7월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 서비스를 시범 운영해 2018년까지 전국 의료기관으로 확대할 예정이지만 추진 속도는 더디다.
지난 1월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내놓은 '입원환자에 대한 포괄간호서비스 제도 도입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보면 현재 기준 포괄간호서비스를 도입했을 때 필요한 적정 간호사 숫자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과 같은 급성기 의료기관에 11만434명, 요양병원은 2만9천115명이다.
현재 급성기 의료기관과 요양병원 간호인력이 각각 6만2천352명, 1만1천721명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제도 정착을 위해서 총 6만5천431명의 추가 간호 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안 교수는 "우리나라 간호인력 수급문제는 간호사 공급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간호업무의 과중함을 덜어주고, 간호등급제를 개선해 탄력적인 인력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이 함께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대형 병원 과밀화 해결 모두 동의하지만…"병상 수보다 간격이 중요"
지난 3월 복지부가 공개한 응급실 과밀화 지수를 보면 과밀화 지수가 100%를 넘는 병원 대부분은 서울대병원(175.2%), 삼성서울병원(133.2%), 전북대학교병원(130.7%), 분당서울대학교병원(125.5%) 등 상급 종합 병원이다.
과밀화 지수가 100%를 넘는다는 것은 응급 병상 수에 비해 환자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상이 없으면 응급실 내원환자는 간이침대, 의자, 바닥 등에서 대기하게 된다.
김윤 교수는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려면 응급실을 거친 입원 환자에게 입원료를 가산하거나 과밀화 지수를 통해 응급의료 수가를 차등화하는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과밀화만큼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병상 과밀화다.
저렴한 입원비를 선호하는 환자들과 많은 환자를 받는 게 유리한 병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다인실 병상' 제도가 나타났지만 이 같은 제도가 메르스를 쉽게 퍼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실 과밀화 해결책은 단순히 1·2인실 확충이 아니라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병실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의료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김종명 건강보험하나로 팀장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병실 제도를 구축하려면 일단은 병상 당 면적 기준을 늘리는 방향으로 병실 환경 개선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의료법상 우리나라 병실 면적 기준은 1인실 6.3㎡, 2인실 이상은 4.3㎡다.
이는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이 권장하는 병상 당 면적 기준인 13.3㎡(3.7m×3.6m)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제로 국내 메르스 첫 번째 환자는 평택 성모병원 2인실에 입원했지만 함께 병원에 머무른 배우자를 포함해 옆 병상 환자, 그의 간병을 맡은 딸, 병문안을 온 아들까지 모두에게 메르스를 전파했다.
다인실을 쪼개서 만든 '무늬만 2인실'이라 병상 당 간격이 좁고 환기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병실 문화를 숙주 삼아서 확산한 만큼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병상 당 면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의료기관의 병상 수 조절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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