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실업난, 독립했던 청년들 부모집에 다시 들어가 함께 생활
<그리스 르포> "대졸 정규직 월급 50만원"…꿈을 잃은 젊은이들
중산층 일레나 세가족 "한달 190만원 수입…생활 아니라 '생존'"
50% 실업난, 독립했던 청년들 부모집에 다시 들어가 함께 생활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수도 아테네에 사는 일레나(24)는 전형적인 그리스 중산층 가족이다.
시내 중심에서 지하철역으로 세 정거장 떨어진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그녀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7년전 영국 런던에 가서 대학을 다녔다. 유럽연합(EU) 시민권자여서 학비는 무료였지만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인 패션 디자인과 관련된 직장을 찾던 그녀는 몇 개월 만에 포기하고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영국인을 채용했다. 내겐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스 1차 위기가 이미 불거진 후인 2012년이었다.
그녀가 얻은 일자리는 아테네 중심 번화가에 있는 유명 브랜드의 대형 의류판매장. 30여명의 종업원을 둔 이 매장에서 그녀는 '보조판매원'이다. 정규직(full-time)이다. 정규직이어서 근무시간도 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루 8시간, 주 5일은 일해야 한다.
3년차인 그녀의 월급은 400유로(약 50만원)다. 임금이 낮아 소득세는 안 내도 된다.
그녀의 월급은 세 가족의 소득원 중 하나다. 30년 넘게 TV 프로덕션에서 일하다 10년전 퇴직한 아버지 일리아 씨는 월 920유로(약 115만원)를 연금으로 받는다. 재정 위기 이전보다 40% 줄었다. 퇴직한 어머니에게도 연금이 따로 나온다.
여기에 일리아 씨는 집 한 채를 더 갖고 있는데 여기서 월세 200유로가 나온다. 위기 이전에는 400유로를 받았다. 그러나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갚는 돈 때문에 이 집에서 얻는 수입은 거의 없다.
월수입이 1천500유로(약 190만원)을 조금 웃도는데도 일리아 씨를 비롯해 가족 모두는 한결같이 "예전에도 중산층이었고 지금도 전형적인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일리아 씨는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했다.
일레나는 "기본적인 먹거리는 싸다. 물가도 조금 내렸다. 하지만, 일부 생활필수품, 특히 수입물품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면서 "생활이 아니라 생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 일리아 씨는 정부가 채권단과 협상하면서 연금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의 위기에 "우리 세대에 책임이 있다. 우리 세대가 돈을 쓰는 데 익숙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잘못만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우리가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일레나는 일자리가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꽤 좋은 대학인 '국립 카포디스트리안 아테네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디오니시스 아느게리스(22)는 일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대학원을 다닌 뒤 유럽 다른 국가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금 부모와 함께 산다.
아느게리스는 "예전엔 제 나이쯤 되면 대부분 부모에게서 독립해 살았는데 위기 이후에는 따로 나가 살던 친구들도 부모 집으로 들어갔다. 저는 계속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옷가게를 하는 부모에게서 용돈을 받아 쓰고 있다는 그는 한 잔에 1.5유로하는 커피숍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점심은 1개에 2유로인 '수블라끼(그리스 전통 음식)'를 먹곤 한다.
아느게리스는 한 친구는 의류매장에서 비정규직(part-time)으로 일하는 데 일주일에 6일, 하루 8시간 넘게 일하고 한 달에 400유로 정도 받는다고 전했다. 추가 근무수당 없이 12시간 일할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또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려면 업무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험을 쌓기 위해 보수 를 받지 않고 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이지만 고용주나 일하는 사람이나 '쉬쉬한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면서 "유럽 다른 나라에서 나중에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게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는 변해야 한다. 위기로부터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만 한다"면서 "그래도 나는 비관주의자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리스 청년들이 50%를 넘는 실업률에 처해 있고, 이를 지켜보는 기성세대도 속수무책인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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