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탈옥에 미국-멕시코 관계 냉각
"탈옥첩보 숨긴 야속한 미국" vs "못 믿을 부패천국 멕시코"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탈옥 때문에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3일(현지시간) AP통신이 입수한 미국 마약단속국(DEA) 문건에 따르면 DEA 로스앤젤레스 지부 요원들은 구스만이 작년 2월 체포된 직후에 그의 탈옥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그러나 DEA는 구스만이 이달 11일 멕시코시티 근처의 연방교도소에서 탈옥할 때까지도 관련 정보를 멕시코 당국에 이첩하지 않았다.
미국 NBC방송에 따르면 이 사태의 배경에는 그간 구스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의 행태 때문에 미국이 누누이 느낀 불신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구스만은 미국 내에서도 여러 건의 범죄 혐의로 수배를 받는 만큼 미국은 멕시코의 수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멕시코 수사 당국에 건넨 첩보를 비웃듯이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구스만은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체포돼 멕시코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앞서 2001년에도 탈옥에 성공했다.
미국으로서는 멕시코 정부 관료들이 마약조직과 유착했을 우려 때문에 구스만의 탈옥 계획을 멕시코 측에 통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의 전직 마약 검사인 지미 거룰 노터데임대학 교수는 NBC와 인터뷰에서 "멕시코 사법당국이 첩보를 마약 조직에 넘길까 걱정돼 미국이 기밀 공유를 꺼렸다"고 말했다.
구스만의 이번 탈옥 때문에 미국이 멕시코를 더욱 불신하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명, 환풍기까지 설치된 1.5㎞에 이르는 땅굴을 통한 탈옥 방식 때문에 멕시코 관료들의 방조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구스만은 뇌물을 무기로 거대 마약조직의 두목으로 승승장구했다. 경찰, 군을 포함한 정부 조직 곳곳에 매수 관료가 있다는 의심도 나온다.
그 때문에 미국 연방 검사들은 구스만이 작년 2월에 체포됐을 때 미국 압송을 요구했으나, 멕시코는 거부했다.
구스만의 비밀장부에 기재된 멕시코 부패 관료들이 압송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는 의심도 있다.
거룰 교수는 "구스만의 탈옥으로 미국의 불신은 깊어질 것"이라며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불신, 방관 속에 이뤄진 구스만의 탈옥 때문에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도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니에토 대통령은 멕시코를 더 안전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살인사건을 줄인 데 이어 구스만 체포에도 성공했다.
2012년 말 집권해 3년째를 맞은 니에토 정부는 하지만 작년 9월 대학생 43명이 경찰과 결탁한 조직폭력단에 피살되는 사건을 계기로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 관급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에서 고급주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정경유착 의혹으로 지지율도 급락했다.
미국 폭스뉴스는 부패관료들의 방조 의혹 속에 정치적 치적인 구스만 검거가 퇴색되면서 니에토 대통령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영국 언론인 맬컴 베이스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구스만 같은 사람을 감방에 가둬둘 능력도 없으면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할 입이 있겠느냐"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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