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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 건물(연합뉴스 사진DB) |
유럽의회, 다국적 대기업 로비 봉쇄 추진
'탈세스캔들' 청문회 출석 거부에 '괘씸죄'?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유럽의회가 다국적 기업들의 로비 봉쇄를 추진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 로비스트들이 유럽연합(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의 고위 관료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이 유럽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또 로비스트들이 유럽의회를 드나들며 의원이나 보좌관을 만날 수 없도록 출입을 불허하는 방안도 봉쇄 계획에 포함돼 있다.
지금은 합법적으로 등록한 다국적 기업의 로비스트들은 의회나 집행위 출입증을 받고 관리 등을 접촉할 수 있다.
20일 EU 전문매체인 EU옵서버는 실비 기욤 유럽의회 부의장이 의원들에게 보낸 이런 내용의 내부문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자로 작성된 이 문서에서 기욤 부의장은 로비스트를 원천봉쇄할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이른바 '룩스리크스(LuxLeaks)'로 불리는 탈세 스캔들을 조사할 청문회 출석을 거부한 다국적 대기업들에 철퇴를 내리기 위해서다.
'룩스리크스'는 다국적 기업 340곳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수익을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로 옮겨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를 뜻한다.
지난해 11월 룩스리크스가 터진 이후 EU 집행위와 의회는 룩셈부르크와 기업 간에 불법적인 세제 특혜 등이 이뤄졌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세금(조사)특별위원회'를 의회 내에 설치했으며 청문회에 관련 기업 대표 또는 책임 있는 대리인이 출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지난달 열린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거나 회피했다.
EU옵서버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EU 집행위나 당국의 조사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공개 청문회에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댔다.
구글의 경우 에릭 슈미트 최고경영자(CEO) 명의 답변서에서 "(청문회에 출석시킬) 적절한 대변자를 찾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고, HSBC홀딩스도 마찬가지 이유를 댔다.
바클레이 그룹과 이케아, 맥도날드유럽법인 사장 등은 선약과 일정 문제를 들어 참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월트 디즈니나 페이스북 등은 출석 요구서에 아예 답변하지 않았다.
이 같은 다국적 대기업들의 태도에 유럽의회는 발끈했다.
기욤 부의장은 로비봉쇄 방안 외에 조사위원회 권한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또 해당 기업들을 '투명성 준수 강령' 위배 혐의로 제소도 할 것임을 시사했다.
다국적기업들은 EU의 '공동투명성등록(JTR)' 규정에 따라 로비스트들을 공식 등록해야 한다.
현재 HSBC 홀딩스가 11명, 구글은 9명, 바클레이와 코카콜라가 각 8명을 공식 로비스트로 등록했다.
아마존과 맥도날드의 유럽법인도 2명을 등록하는 등 대부분 다국적 대기업이 공식 로비스트를 브뤼셀에 상주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도 현지 법인 소속 공식 로비스트를 두고 있다.
◇ 룩스리크스 = ICIJ는 지난해 11월 다국적 기업들의 탈세(기업 측 주장은 합법적 절세) 전모를 드러내는 2만8천여 쪽의 문서를 입수했다. 국제회계법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 사내 문서였다.
이 문서엔 룩셈부르크 정부가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 대기업 340개의 세금을 줄여주기 위한 비밀거래계약을 맺었고 PwC는 자문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계약에 따라 기업들은 룩셈부르크에서 세무신고를 해 신고 수익의 1%도 안 되는 돈만 세금으로 낼 수 있었다.
조세 회피 방법으로는 `이전(移轉)가격조작(transfer pricing)'이라는 수법이 주로 사용됐다.
이는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높은 나라의 법인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업 비용을 떠넘기고 이익은 세율이 낮은 곳에 설립한 법인에 몰아 줘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기업들은 케이맨제도, 네덜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이른바 '조세천국'에 명목상의 법인(페이퍼 컴퍼니)을 만들어 이런 창구로 이용한다.
언론매체들이 룩스리크스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자 불똥이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에게도 튀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체) 의장도 지낸 융커는 재작년까지 19년간이나 룩셈부르크 총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ICIJ가 문제 삼은 탈세 의혹 대부분은 융커의 총리 재임 시절 일어난 것이다.
융커는 자신은 불법과는 관계없으며 '거대기업의 친구'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융커 위원장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는 등 사임 압력이 거세졌다.
결국, 유럽의회의 불신임 투표에 부쳐졌으나 부결돼 융커는 위기에서 살아났다.
그럼에도, 현재 룩스리크스를 조사 중인 EU 집행위 등은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고 EU옵서버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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