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왜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였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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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전쟁범죄, 반인류범죄 혐의로 아프리카특별법정의 재판을 받게 된 아프리카 차드의 전 독재자 히세네 하브레의 20일 법정 출두 모습.(AP=연합뉴스) |
'아프리카 미래를 위한 재판' 차드 전 독재자 특별법정 섰다
80년대 8년간 재임 중 4만 명 살해…아프리카 지도자 국제재판 첫 사례
피해자들 "왜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였는지 묻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8년간의 재임 중 국민 4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 정도로 공포와 억압의 학정을 폈던 아프리카 차드의 독재자 히세네 하브레(72)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세네갈 특별법정에서 20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한 재판' '아프리카 정의의 시험무대' 등으로 불리며 세계인의 주목 속에 열린 첫날 재판엔 고문·살해의 희생자와 가족, 일반인, 하브레 지지자, 내외 취재진 등 1천여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고 외신들이 21일 전했다.
앞으로 3개월가량 진행될 이 재판은 여러 면에서 '최초'를 기록했다.
당사국이 아닌 나라(세네갈)의 법정이 외국(차드)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를 처벌할 수 있다는 보편적 재판관할권이 아프리카에서 시행되는 첫 사례이다.
이 재판은 또한 제3국의 법정이 다른 나라의 전직 대통령을 인권범죄로 처벌하기 위해 열리는 점에서도 처음이다.
제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이번 아프리카특별재판정(EAC) 재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며 "아프리카에서 정의 실현을 위한 이정표"라고 부르고 이제 중대범죄를 저지른 지도자들이 처벌(justice)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하브레의 악명높은 정치경찰에 무기 공급, 훈련 지원 등을통해 하브레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과 프랑스도 마침내 이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을 환영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하브레가 당시 서방의 골칫거리였던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를 견제한다는 이유로 그의 재임기간(1982-1990년) 그의 학정에 시달려 터져 나오는 차드 국민의 신음에 귀를 막았었다.
다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하브레를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실질적인 지원을 했다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인정했다. 또 제임스 줌월트 세네갈 주재대사와 스티븐 랩 전쟁범죄 담당 대사가 첫날 재판을 방청함으로써 이 재판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보여줬다.
하브레가 1983년 리비아의 지원을 받는 경쟁세력의 공세에 직면했을 때 공수부대 3천 명 등을 지원했던 프랑스도 자신들이 이 특별법정을 세우는 데 기여했음을 강조하면서 하브레에 대한 재판 개시를 환영했다고 프랑스의 AFP통신은 21일 전했다.
하브레가 1990년 12월 현 차드 대통령 이드리스 데비가 이끄는 반군에 쫓겨난 후 구성된 10인 진실위원회는 199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치적 반대자와 경쟁부족 4만 명 정도가 하브레의 비밀경찰에 살해된 것으로 추산했다.
이 재판엔 앞으로 증인 100여 명이 나설 예정이며, 고문 등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만 4천 명이 넘는다.
`아프리카 정의의 시험무대'인 이 재판은 그러나 하브레 축출 4반 세기 만에, 그리고 차드인 피해자 7명이 2000년 1월 세네갈에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하브레를 고소한 이래 15년만에 열릴 만큼 정의의 실현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브레는 이 고소 다음 달 "고문행위 공범"으로 기소됐고 그해 11월엔 벨기에에 거주하던 차드인 피해자들에 의해 벨기에에서도 고소됐으나, 세네갈인들의 유명한 테랑가(지나칠 정도의 환대, 친절) 속에 그의 편안한 망명생활엔 변함이 없었다.
하브레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국제 압력에 버티던 세네갈은 2012년 들어선 새 정부가 하브레를 송환하지는 않되 세네갈에서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그해 12월 아프리카연합(AU)측과 특별법정을 세우는 협약에 서명했다.
마침내 2013년 6월 세네갈 당국은 가택연금 상태이던 하브레를 공식체포해 특별법정에 넘겼고, 재판관들은 구속재판 결정을 내렸다. 세네갈 재판관 2명과 부르키나파소 재판관 1명으로 구성된 아프리카특별법정은 이후 19개월에 걸쳐 약 2천500명의 증인을 면담조사했다.
"정치적 음모"라며 재판을 거부하는 하브레는 첫날 강제 출석하면서도 "이것은 가짜 재판이다" "식민주의자에 죽음을" 등을 외치며 소란을 피워 법정 밖으로 끌려나갔다. 재판부는 그러나 21일 이틀째 재판에도 하브레를 강제 출석시키기로 했다.
지난 1999년부터 하브레 처벌에 매달려온 HRW의 인권변호사 리드 브로디는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하브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왜 나를 감옥에 가두고 고문했는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였는지 묻고 싶어한다"고 말했다고 AF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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