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춤의 거목' 이매방 명인 추모식에 500여명 참석
"고달픈 삶 속 춤의 맥 이어"…"예맥 길이남아 전승될 것"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정중동(靜中動)이 생명이야…정(靜)은 밤이지. 밤이 무서우면서도 없으면 눈이 충혈되고 잠을 못 자잖아. 동(動)은 낮이야…(중략) 춤꾼은 모름지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와…(중략). 나는 샛길로 빠지지 않고 외길로 춤추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어."
우봉(宇峰) 이매방 선생의 생전 모습이 4개의 스크린에 나타나자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추모식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와 탄식이 흘렀다.
10분 남짓한 고인의 생전 영상으로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진 것만은 아니었다.
이 명인이 "남자 옷 입고 춤을 춰도 여자로 착각해, 그 정도로 춤을 예쁘게 췄던지…"라는 회고 영상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날 문화예술인 장(葬)으로 엄수된 추모식에는 이 명인의 유가족을 비롯해 지인과 제자 등 400∼500명이 참석해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조사, 추도사, 생전 영상, 헌화 및 분향, 헌가, 추모 굿 등의 순서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이매방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선생님은 춤을 품고 태어나 춤을 담아내고자 평생을 무대에 서시다 장삼 자락 번뇌 삼아 정(靜)의 세상으로 홀연히 떠나셨다"며 "이제 까치발 외씨버선 고이 접어놓으시고 부디 영면하옵소서"라고 말했다.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은 "선생님의 예혼정신과 춤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며 "후학 지도도 소홀함이 없으셨던 선생님의 예맥은 길이 남아 전승될 것"이라고 애통해했다.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삶과 예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며 고달픈 삶 속에서도 춤의 맥을 이어오신 저희의 고향이었다"며 "휠체어를 타고 한복차림으로 극장에 나타나시던 고운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겠다"고 했다.
헌화와 분향의 차례가 오자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제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숙연했던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이 명인의 제자는 문화재청에 입적된 이수자를 기준으로 총 250여명에 달한다. 이수자 외 전수자와 학습자까지 포함하면 제자는 총 1천여명에 이른다.
양종승 동국대 객원교수(우봉이매방춤보존회 수석부회장)는 "근현대사 문화 격변기를 거치면서 민족 춤은 이매방이라는 인물로 그 맥이 유지됐다"며 "한국 전통춤의 시조이자 뿌리인 분이 돌아가셨다는 상실감으로 무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로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안숙선 명창이 춘향가 중에 '이별가'를, 중요무형문화제 경기민요 전수조교 김영임 명창이 회심곡 가운데 '저승가는 길'을 불러 이 명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비나리의 대가이자 사물놀이의 창시자인 이광수 명인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헌가를 했고, 진도씻김굿보존회의 추모굿도 이어졌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고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훈장을 전달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고인은 10일 오전 7시 30분 발인 이후 서울추모공원 화장장으로 옮겨져 오전 9시께 화장된다. 유해는 경기도 시안가족추모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한국춤의 거목'인 고인은 지난 7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80년 넘게 전통춤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인물로, 생존 예술가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 등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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