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본 광복 70년> ②역대 대통령 화두, 통일·경제-1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8-11 05: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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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2014년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62편 계량 분석
이념·성향 달라도 통일·경제에 주력


<빅데이터로 본 광복 70년> ②역대 대통령 화두, 통일·경제-1

1949~2014년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62편 계량 분석

이념·성향 달라도 통일·경제에 주력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뒤집힌 역사인식을 지금도 우리는 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중략)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도 그 (진상 규명) 대상이 돼야 합니다."

2004년 8월 15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큰 파장을 낳았다. 과거사 청산을 화두로 삼은 노 전 대통령 연설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보수 단체들의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과거사 청산 정국이 본격적으로 전개됐고, 사회 전반에서 '역사 전쟁'이 격화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대통령의 연례적인 공개 발언 중 가장 주목받는 연설이다.

대통령은 북한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에 외교 메시지를 전할 뿐 아니라 가깝게는 그해 하반기, 멀게는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운영 방향을 펼쳐보이고 핵심 화두를 던지는 장으로 광복절 경축사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4명의 광복절 경축사를 포함한 연설 작업에 관여한 김철휘 국무총리실 연설비서관은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광복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선진국이나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목표가 자연히 확장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메시지들이 국정 전반에 걸쳐 나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광복 70년 동안 누적된 역대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는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대한민국 시대정신의 명암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1949~2014년 역대 대통령 10명의 광복절 경축사 62편을 계량 분석했다.

이 기간에는 이승만(1948~1960·10편), 윤보선(1960~1962), 박정희(1963~1979·17편), 최규하(1979~1980·1편), 전두환(1980~1988·7편), 노태우(1988~1993·5편), 김영삼(1993~1998·5편), 김대중(1998~2003·5편), 노무현(2003~2008·5편), 이명박(2008~2013·5편) 전 대통령과 박근혜(2편)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1명이 재임했다.

다만, 윤보선 대통령 경축사는 국가기록원에 문의한 결과 자료가 없어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못했다.

먼저 연합뉴스 미디어랩은 총 29만 7천875자에 7만 680단어로 구성된 경축사에서 형태소 분석으로 열쇳말들을 뽑아내 그 빈도를 측정한 결과를 살폈다. 이와 함께 경축사 전문에서 열쇳말들이 쓰인 맥락을 연구했다.



◇ 역대 대통령, '통일'과 '경제' 첫손에 꼽아

역대 대통령들은 이념뿐 아니라 국정 철학, 시대 상황, 정치적 배경이 모두 달랐지만, 광복절 경축사에서 사용한 핵심 단어들만큼은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들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70년을 관통하는 최고 지도자들의 핵심 메시지는 '통일을 이룩하고 잘 살자'였다.

경축사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된 단어는 '우리'(2천 32회)로 집계됐다.

이는 평소 일인칭 복수 대명사인 '우리'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인 언어생활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를 자주 언급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결속력을 다지려는 지도자들의 의도도 엿보인다.

각각 685회, 485회 언급된 '국민'과 '민족'이 그 뒤를 이었다. '민족'은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우리' 다음으로 자주 사용됐지만,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는 '국민'이 '민족'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주창했던 세계화 영향과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민족 개념이 퇴색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466회 언급된 '세계'도 대통령 경축사의 단골 용어였다.

'우리'와 '민족', '국민' 등은 문장을 완성하기 위한 주어로 쓰인 경우들이 많았기에 경축사 화두로서 이들 단어 의미는 크지 않다. '세계' 또한 '세계 모든 나라'나 '세계무대'처럼 통상적인 수식어로 쓰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 때문에 실질적인 경축사 화두를 찾고자 목적어로 쓰인 단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중 대표적으로 빈번히 언급된 단일 단어는 '남북'(남북한 포함·404회)과 '통일'(384회)이었다.

특히 "제일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통일"이라고 외쳤던 이승만(20회) 대통령을 시작으로 박정희(166회), 최규하(6회), 전두환(58회), 노태우(49회), 김영삼(53회), 김대중(6회), 노무현(3회), 이명박(16회), 박근혜(7회) 대통령이 '통일'을 언급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남북이 분단된 현 상황을 '미완의 광복'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남북통일을 자연히 핵심 화두로 삼았다."진정한 의미의 광복은 통일된 나라를 이룩할 때 완성된다"(1994년 김영삼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는 논리다. 남북 관계나 통일과 연결지을 수 있는 '평화'나 '협력'도 자주 사용됐다.

전쟁 폐허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에서 경제 부흥은 모든 지도자에게 통일 이상으로 실질적인 사명이었다. 대통령 10명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제'가 언급된 횟수는 359회로 집계됐다. '부강'이나 '성장'처럼 개념어로 함께 묶을 수 있는 단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대폭 증가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으로 국가 경제를 일으켰던 박정희 대통령은 17편 경축사에서 '경제'(62회)를 언급할 때마다 '자립'과 자주 연결했다.'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5편의 경축사에서 '경제'를 67회 언급했는데 그중 '시장 경제'가 핵심이었다.



◇ '반공' 몰두한 이승만…'평화'와 '긴장' 줄타기한 박정희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승만 정부는 북쪽 지역에 들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맞서 공산주의를 반대(反共)하고 공산주의자를 멸(滅共)하는 것을 국시로 삼았다.1950년 북한 남침으로 시작한 한국 전쟁은 이를 더 고착화했다.

이승만 대통령 경축사에도 냉전과 분단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우리'(365회)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자유'(94회)로 집계됐다.



공산당과 공산, 공산군, 공산주의 등 그 대척점에 있는 '공산'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횟수는 113회에 달한다.

사실상 같은 대상을 칭하는 '침략자'나 '침략', '적'을 언급한 횟수를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민족통일 대의에는 공감했지만, 방법론적으로 북진통일을 고집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경축사 10편을 통틀어 '남북'이 언급된 횟수가 6번에 불과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승만 정부는 장기 집권 끝에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상징되는 탈법성을 드러내면서 결국 4·19 민주혁명으로 무너졌다.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정통성 결여 문제를 한층 강력한 반공 정책으로 만회하려 했다.

한국전쟁 상흔이 사회 전반에 남아있었던 데다, 1960년대 세계 냉전에 따른 치열한 남북 체제 경쟁이 이를 부추겼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채택 이후 100회 이상 남북 회담을 할 정도로 북한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던 정부이기도 했다.

내치에 집중하고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화적인 대북 제스처가 필요했다.



박정희 대통령 경축사에서도 이런 양면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목적어로 쓰인 경축사 단어 중에서는 '통일'(166회)과 '평화'(128회)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 '대화'를 사용한 횟수도 48회로 나타났다.

하지만 공산(40회), 공산주의자(22회), 공산주의(9회), 무력(31회), 침략(26회), 긴장(23), 남침(22회), 북괴(19회) 등 북한과 관련해 부정적인 단어들도 192회 언급됐다.

박정희 대통령 경축사에서는 남북문제 못지않게 경제와 관련된 언급들이 잦았다.

번영(60회)과 건설(59회), 경제(62회), 개발(14회), 산업(13회) 등 경제와 직접 연관된 개념어를 추린 결과 208회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노력'(61회)이나 '성취'(27회), '의지'(27회) 등 국가적인 계몽 운동의 색채를 띤 단어들도 자주 발견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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