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맞닥뜨린 삶의 다른 얼굴…둘러앉은 세 여자
서유미 중편소설 '틈'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여자는 청소를 미루고 집을 나와 은행에 갔다. 공과금을 내고, 아이들 학습지 수업료를 낼 현금을 찾아놔야 했다. 은행에 사람이 없으면 대출 상담도 받아볼 생각이었다.
대출 상담은 미루고 은행에서 나온 여자 눈에 도로에 세워진 남편의 차가 보인다. 억지로라도 일찍 깨워 아침을 먹일 걸 그랬다고 생각한 순간, 조수석에 앉은 다른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은 그 여자의 볼을 쓰다듬는다.
소설가 서유미의 새 중편 '틈'(은행나무)은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남편의 외도가 의심되는 장면을 목격한 여자 '미호 엄마'는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목욕탕에 간다. 아는 얼굴이 없을 줄 알았던 목욕탕 사우나에서 여자는 오며 가며 한 번쯤 인사를 나눠본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는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자식 생각도 하지 않는 비정한 엄마로 몰린 여자 '민규 엄마', 그리고 미호 엄마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남편의 외도를 자주 겪은 다른 여자 '윤서 엄마'. 둘러앉은 세 여자는 모두 인생의 '틈'을 마주한 사람들이다.
"멀쩡하던 줄이 갑자기 끊어지거나 바닥이 무너지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 깨닫지 못한다. 틈이 벌어지고 부서지고 깨진 뒤에야 그게 애초에 견고하지 않고 연약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45쪽)
인물들은 사연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찾아간다.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집에 있으면서 잃어버린 이름이다.
작품은 그야말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가며 삶의 중요한 가치라고 하는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그려낸다. 누구나 한 번은 부딪힐 수 있는 삶의 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삶의 다른 얼굴을 목격한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허망함과 아픔, 일상을 반으로 가르는 고통 가운데 서 있겠지만, 그들이 무릎이 닿을 만한 거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