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본격 복원 시작…광화문과 건청궁 등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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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전각이 훼철됐다. 왼쪽 사진은 광화문이 복원된 2010년에 촬영됐고, 오른쪽 사진은 1951년에 찍혔다. 1951년 사진에는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가 버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화재청 제공) |
<궁궐100년> ① 경복궁, 만신창이가 된 법궁…여전히 복원중
일제, 총독부 청사와 박물관 짓기 위해 전각 훼철
1990년부터 본격 복원 시작…광화문과 건청궁 등 중건
<※ 편집자 주 = 조선의 궁궐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습니다. 일제는 여러 전각을 파괴하고, 궁궐의 권역을 축소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옛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구한말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궁궐이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덕수궁 편으로 나눠 3꼭지로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태조 4년(1395) 완공된 경복궁(慶福宮)은 '시경' 주아(周雅) 편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큰 복을 도우리라'는 구절에서 명칭을 따 왔다.
경복궁은 1553년 화재가 발생해 근정전(勤政殿)을 제외한 침전과 편전이 소실됐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려 했으나 재정을 충당하지 못해 계획은 수포가 됐다.
경복궁 중건은 고종이 즉위한 뒤인 1865년 신정왕후의 명으로 시작됐고 2년 만에 주요 전각과 문의 건축 공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조선에서 으뜸가는 궁궐인 경복궁은 또다시 일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 경복궁 내 건청궁(乾淸宮)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주인이 사라진 궁에서 지속적으로 훼철(헐어서 치워버림)을 단행했다.
일제는 공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경복궁 전각을 허물어 각종 부재를 팔아넘기는 한편,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건물을 무너뜨렸다.
특히 1926년에는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동쪽 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전했다.
해방 직후 경복궁에는 일제가 지은 총독부 청사와 부속 건물, 박물관, 미술관이 있었다. 19세기 세워진 건물 중에는 근정전과 사정전(思政殿), 경회루(慶會樓), 자경전(慈慶殿), 향원정(香遠亭) 등이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경복궁은 문화재가 아닌 연회와 유희의 장소로 이용됐다. 경회루 앞 연못은 스케이트장으로 쓰였고, 일본이 건설한 건축물에서는 각종 박람회가 열렸다. 그나마 남은 전통 건물은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용됐다.
1960년대는 근정전 행각 보수와 경회루 단청 공사 등이 이뤄졌으나,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30경비대대 구조물을 짓는 등 엉뚱한 방향으로 관리가 진행됐다.
한동안 큰 변화가 없던 경복궁은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과 정비에 돌입했다. 정부는 경복궁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2010년까지 총독부 청사와 현대식 건물 대부분을 철거하고 전통적인 전각을 짓는 1차 복원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침전, 동궁, 흥례문(興禮門), 태원전(泰元殿), 광화문 등 5단계로 나뉘어 시행됐으며, 경복궁의 중심축을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交泰殿),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하는 자선당(資善堂), 건청궁이 새롭게 지어졌고, 광화문은 본래의 위치에 목조 건물로 복원됐다. 광복 직후 36동이던 경복궁 건물은 1차 사업이 완료된 뒤에는 125동으로 증가했다.
경복궁 복원은 2차 사업으로 넘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임금의 수라와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궁중 부엌인 소주방(燒廚房)이 일반에 공개됐다.
7월에는 외국 사신을 만나는 장소로 자주 사용한 흥복전(興福展) 권역 복원에 쓸 소나무 52본을 기증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2030년까지 궐내각사, 동궁, 혼전, 선원전, 군사관청과 내사복(內司僕, 임금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곳) 권역을 복원할 예정이다.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경복궁 전각은 379동으로 늘어나게 된다. 고종이 중건했을 때 건물 수와 비교하면 75.8% 수준이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고건축 전문가 윤홍로 씨는 "일제가 다른 궁궐이 아닌 경복궁에 총독부 청사를 지은 이유는 조선의 법궁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일본인들은 유교 정신으로 지은 경복궁에 불교 석탑 30여기를 옮겨와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0년간의 복원은 경복궁에 있던 전각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는다는 의의가 있다"면서 "소주방 같은 건물도 궁중 문화를 보여주는 사료이므로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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