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전쟁의 대상 돼…역사의 퇴행은 민주주의의 퇴보"
정용욱 서울대 교수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에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역사를 매개로 정파적 이해관계를 강요하는 행위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이런 역사의식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역사학계에서 나왔다.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학술대회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에 기조 발제자로 나서 "탐구의 대상인 역사가 언제부터인가 전쟁의 대상이 됐다"며 "한국 사회가 과거를 과거로 다루지 않고 정치적 의도를 과장하고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데 역사를 끌어오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일제하 민족해방운동과 해방 후 민주화 운동은 한국 사회를 민주화의 도정 위에 올려놓았지만, 어느 것도 당시에는 역사로 자유롭게 분석될 수 없었다"며 "그러나 민주주의 역량이 성장하면서 식민지와 분단, 독재가 강요한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동시대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근현대사 연구의 활성화는 괘를 같이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작년 발생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가 전쟁의 대상이 된 양상을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이 편향적인 역사인식과 역사 왜곡으로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하게 하면서 역사를 이념논쟁으로 만들었다"며 "자신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역사를 매개로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행위는 전형적인 색깔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는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쇄신하고, 공동체의 역사적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해왔다"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역사학은 상보적 관계에서 서로를 지원하며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인식의 퇴행을 강요하는 것은 반민주적 시도이자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온다"며 "역사의 퇴행을 극복하려면 민주적 역량의 결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명혁 동국대 교수도 '과거사 정리와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라는 발제문에서 과거사 정리 활동을 현 역사학계의 가장 큰 과제로 규정하면서 "과거사 정리는 역사에 대한 진실규명에서 출발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지속적인 발걸음이기도 하다"며 정 교수의 주장을 지지했다.
이번 학술 대회는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소 등 3개 단체가 해방 70주년을 맞아 개최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박찬승 한양대 교수,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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