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바 쿠바" 반세기만 美성조기 게양하자 쿠바 국민들 탄성
케리 "쿠바, 진정한 민주주의 최대한 누릴 것으로 확신"
(아바나<쿠바>=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비바 쿠바"·"브라보". 기쁨과 환희, 감동의 탄성이 카리브해에 크게 울려 퍼졌다.
54년 7개월 11일 만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말레콘 방파제 위로 다시 내걸린 순간이었다. 14일(현지시간) 오전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 주변에 몰려든 1천여 명의 쿠바 국민들은 일제히 큰 목소리로 반세기의 '역사적 화해'에 환호했다.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성조기 게양 장면은 가장 실감 나는 '하나의 드라마'였다.
성조기가 다시 깃대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이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1961년 1월3일 양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바로 다음날 성조기를 내려야 했던 70대 노(老) 해병 세 명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 그래도 검정 해병대 제복을 입은 이들 세 명은 반세기 만에 돌아온 같은 자리에 서서 현역 해병들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10 m 높이의 깃대 위로 성조기는 마치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 올라갔고, 양국 정부 대표단은 이를 숨죽인 채 지켜봤다.
성조기가 깃대 꼭대기에 올라서 멈추자 대사관 주변 말레콘 방파제와 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쿠바 국민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 속에서 "비바" "브라보"를 외치거나 쿠바 국기를 흔들었다. 일부 국민은 아파트 옥상이나 건물 베란다로 나와 탄성을 질렀다.
이날 행사를 지켜보고자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날아왔다는 악사라(63)는 "내 평생에 이런 날이 오기를 꼭 기다렸다"며 춤을 추었다. 악사라는 쿠바 혁명후 9살 때 부모와 함께 카리브해를 건너왔다.
대사관 바로 맞은 편인 '반제국주의 광장'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 이번 행사를 축하했다. 냉전시대의 적대적 관계를 상징하는 대사관과 반제국주의 광장 사이의 '깃발의 벽'은 이날로 무너진 느낌이었다. 깃발의 벽은 미국이 2006년 전자광고판을 이용한 정치 선전에 나서자 쿠바 정부가 바로 다음 달인 2월 제국주의 확산을 막고자 깃대 138개를 올려 정치 선전을 막은 도구다.
쿠바계 미국 시인인 리차드 블랑코는 이날 축시에서 "바다(미국과 쿠바 사이의 바다)는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바다에 속해있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성조기가 다시 올라간 깃대 뒤로는 말레콘 방파제를 배경으로 검은 색과 빨간 색, 푸른 색 '올드모빌' 3대가 이번 행사를 축하라도 하듯 멋진 맵시를 뽐냈다.
쿠바 국민들의 이 같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쿠바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해온 반체제 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초청받지 못한 이들의 존재는 앞으로 미국과 쿠바가 풀어야 할 '정상화의 그늘'인 것만은 분명하다.
존 케리 장관은 "우리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켜냈다(promise made, promise kept)"고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미국은 쿠바의 민주주의 원칙들과 개혁들의 옹호자로 남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은 쿠바 국민이 지도자들을 자유롭게 선출하고,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신념을 실행하고, 경제적·사회적 정의가 보다 완벽하게 실현되고, 시민사회가 독립적이고 번창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최대한 누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국과 쿠바의 새로운 관계에 두려울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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