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전 국기 내린 老해병 참석한 가운데 다시 게양…다음달 정상화 후속 협상
54년만 아바나에 美성조기…인권·민주주의 놓고는 대립(종합)
케리 "진정한 민주주의" 언급에 로드리게스 "쿠바는 인종차별·고문 없어"
54년전 국기 내린 老해병 참석한 가운데 다시 게양…다음달 정상화 후속 협상
(아바나<쿠바>=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54년 만에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게양됐다.
미국 정부는 14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을 비롯한 양국 정부 고위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성조기 게양식과 대사관 재개설 행사를 갖고 쿠바와의 외교활동 재개를 공식으로 선포했다.
이로써 양국은 1961년 1월3일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54년 만에 국교 정상화 프로세스를 일단 완결지었다. 앞서 양국은 지난달 20일 각각 상대 수도에 주재하는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오전 국무장관 전용기를 이용해 아바나로 내려와 미국 대사관에서 성조기 계양식을 직접 주재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45년 에드워드 라일리 스테티니어스 국무장관이 방문한 지 70년만의 일이다.
성조기는 1961년 1월 3일 양국의 외교관계 단절 직후 성조기를 하강했던 짐 트레이스(78) 당시 미 해병대 원사와 마이크 이스트(76) 하사, 래리 모리스(75) 상병이 같은 자리에 나와 다시 게양식을 가졌다. 다만 이들 세명은 고령인 탓에 현역 해병대원 3명에게 새로운 성조기를 건네 대신 게양토록 한 뒤 경례를 붙였다.
양국은 이날 행사후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다음 달 중순부터 미국의 대(對) 쿠바 금수조치와 여행·무역·금융 관련 경제제재 해제를 중심으로 국교정상화 후속조치를 본격적으로 협의해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은 미국 대사관 재개설 당일인 이날 쿠바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놓고는 대립해 후속협의 과정에서 적지않은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미국은 쿠바 국민이 지도자들을 자유롭게 선출하고,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신념을 실행하고, 경제적·사회적 정의가 보다 완벽하게 실현되고, 시민사회가 독립적이고 번창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최대한 누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쿠바의 언론·집회·결사·표현의 자유가 당국의 통제를 받고 반체제 인사들과 정치범들이 체포와 투옥을 당하는데 따른 미국 조야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드리게스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쿠바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슈에 대해 심각한 입장차를 갖고 있다"며 "쿠바는 인권문제와 관련한 기록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인권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그러면서 "쿠바는 사람들이 인종적 차별이나 공권력 남용을 당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미국의 인권 상황을 겨냥하고는 "쿠바에서는 당국이 사람을 고문하거나 해외 군사작전을 통해 민간인들의 희생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이 '고문'을 언급한 것은 미국의 관타나모 수감시설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는 이어 "쿠바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일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그러나 "양국이 차이가 있음에도, 쿠바 정부는 인권 문제를 포함해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금수조치와 경제제재 해제의 속도와 폭, 관타나모 기지 반환, 반체제인사의 처우와 집회·결사·언론·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문제, 쿠바 정부가 몰수한 미국인 자산 반환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적지않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케리 장관은 내년 대선을 통해 선출되는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쿠바 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을 묻자 "나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이것을 창밖으로 그냥 던져버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오후 미국대사 관저에서 쿠바 외교관과 문화운동가, 기업가, 정치인, 예술가, 인권운동가, 독립언론 대표 등 각계각층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소규모의 성조기 게양식을 연 뒤 워싱턴D.C.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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