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 제1부원장 "수교 여건 좋아져…남북한 '사이'는 두나라가 풀어야"
쿠바 문화원 고위인사 "아바나에 태극기 꽂힐 날 빨리 올것"
"미국과는 '하향식', 한국과는 '상향식'…최고지도자 간 합의만 있으면 돼"
문화원 제1부원장 "수교 여건 좋아져…남북한 '사이'는 두나라가 풀어야"
(아바나<쿠바>=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태극기가 꽂히고 서울에 쿠바 국기가 꽂힐 그날이 빨리 올 것 같습니다"
미국 성조기가 54년 만에 아바나에 게양되기 바로 전날인 지난 13일(현지시간) 쿠바 호세마르티 문화원의 에라스모 레스카노 로페스 제1부원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양국 사이에 오가는 교류의 밀도와 폭을 감안해보면 '겉치레용' 발언만은 아니다. "수교는 양국 최고 지도자 간에 정치적으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미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통해 기초가 다져진 상태여서, (최근 국교정상화를 한) 미국보다 훨씬 수교하기가 좋은 여건"이라고 강조했다.
호세마르티 문화원은 쿠바 독립전쟁 영웅 호세 마르티의 유지를 받들어 전 세계 국가들과의 문화교류를 전담하는 기구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비정부기구(NGO)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쿠바 정부의 정책 방향과 '조율된' 메시지와 행보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특히 한국과의 수교가 대미 국교정상화와는 차별적 접근방식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는 최고지도자 간 정치적 합의가 선행되고, 이후 경제·문화교류가 뒤를 따르는 '하향식'이었지만 한국과의 수교는 문화·경제 등 낮은 단계의 교류를 통해 관계 개선의 토대가 축적된 '상향식'이라는 의미다.
그는 "시기가 언제될지는 모르지만, 미국보다 외교관계를 맺기 훨씬 좋은 여건"이라며 "그날이 올 것에 대비해 문화와 학술, 경제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 수교 과정에서 '북한 변수'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와 우호관계를 증진해 나가는데 관심이 있다"며 "남북관계의 문제는 양국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를 놓고는 '남북 내부의 문제'라는 원칙론으로 대응했다. 같은 민족인 남북한이 서로 해결해야 하며 쿠바를 포함한 외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과 문화·경제교류를 확장해가고 있는 쿠바는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는 정치적으로 수교관계를 맺고 있어 남북한 사이에서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다만, 남북한이 관계 개선 과정에서 '첫 걸음'을 잘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상호 이해에 기초해 문화와 학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늘려나간다면 남북한 간의 관계개선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과의 수교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방법이 거꾸로다. 미국과는 위에서 밑으로 이뤄지고 있다. 양국 최고지도자 간에 합의는 있지만, 문화나 학술교류는 별로 없다. 반대로 한국과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다.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통해 기초가 잘 다져져 있어 최고 지도자들 간에 합의만 있으면 수교가 될 수 있다. 내가 볼 때는 미국보다도 국교를 맺기가 오히려 더 좋다.
--시기가 언제쯤 될 것으로 보는가.
▲그날이 언제 올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아바나에 성조기가 올라갔듯이 아바나에 태극기가 꽂히고 서울에 쿠바 깃발이 꽂히는 날이 빨리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날이 올 것에 대비해 문화와 경제교류를 더욱 확장시켜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특히 쿠바인들은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인들은 용감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북한이 혹시 변수가 될 수 있나.
▲북한과는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다. 쿠바가 어려웠을 때 북한이 쿠바와의 연대감을 많이 표시했다. 그러나 남북한 사이의 문제는 두 나라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거듭 강조한다면 우리는 남북한 사이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국인들이 통일된다면 좋은 일이며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첫 걸음을 잘 떼는 것이다. 문화교류부터 시작해 모든 영역에서 상호이해에 기초해 교류를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첫 걸음을 잘 떼면 두 번째 걸음이 더 좋다.
--한국과의 문화교류는 현재 어떤 수준이고, 호세마르티 문화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화원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00년대 초 쿠바에 왔던 한인들의 후손들인 이들은 8년 전만 해도 한국말을 잘 몰랐다. 그러나 이들이 문화원에서 모임을 갖고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재 문화원 산하 900개의 호세마르티 클럽 가운데 4개가 한인들의 모임이 됐다. 한인들뿐만 아니라 쿠바인들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재 12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다. 올가을이면 4번째 학기가된다. 한국어를 가르칠 교사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교사 한 명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다. 문화원은 쿠바 TV방송국과 협력해 한국 TV방송을 상영하도록 했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던 쿠바인들이 이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풍습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다. 문화교류는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3년간 무용과 문학, 사진, 예술, 언론 분야에서 다방면에 교류가 증진돼왔다. 특히 코트라 아바나 무역관(관장 정덕래)이 양국 간 교역 활성화에 더해 문화교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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