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거장 필립 가렐 "영화는 미친 사람들이 하는 일"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12-24 18: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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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국립현대미술과 전시 맞춰 첫 내한
△ 대답하는 필립 가렐 감독

"영화는 항상 어렵고 힘든 산업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든 영화감독들은 항상 고생했습니다. 영화 산업 자체가 미친 사람들이 하는 일 같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필립 가렐(67)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인슈타인을 연상케 하는 부스스한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가렐과 친구들, 영화를 생각하다' 토크프로그램 무대로 걸어 들어왔다. 가렐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 '필립 가렐-찬란한 절망'과 '필립 가렐 회고전'이 그를 한국으로 이끌었다.

필립 가렐 감독은 16세때 만든 단편영화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1964)'로 데뷔해 일찌감치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펼치던 가렐 감독은 1982년 '비밀의 아이(L'Enfant Secret)'로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장 비고상(Prix Jean Vigo)을 받으며 새로운 점환점을 맞이한다. 이후 '평범한 연인들(Les Amants Réguliers)'로 2005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과 2006년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비평상을 수상하며 거장으로서의 행보를 알렸다.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이지만 '작품의 흥행'은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가렐 감독은 올해 발표한 신작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L'ombre des femmes)'을 통해 처음으로 흥행을 맛봤다며 해맑게 웃었다.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빨리 진행되서 21일 만에 끝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작품 흥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찍은 지 55년이 됐는데 작품이 흥행할 때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은 사랑의 역설과 모순을 분석하는 내용으로 필립 가렐과 장 클로드 카리에르, 캐롤라인 데루아스-가렐, 아를레뜨 랑만 등 4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그동안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고수해온 가렐 감독의 작품은 상업적인 성공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신작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의 흥행 역시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이 왜, 유독 흥행했는지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설명을 붙이지만 사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영화도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바로 예술입니다. 예술은 일원화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모릅니다."

가렐 감독은 평생을 영화찍는 일에 몰두해왔지만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돈이 있으면 더 이상 영화를 안 찍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장편영화를 한편 찍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편씩 찍을수록 점점 더 어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말 잘살기 위해서는 오래 전에 영화를 그만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1980년대쯤인데 당시에는 정말 돈만 있으면 더 이상 영화를 안 찍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렐 감독이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있었던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이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필립 가렐의 아버지는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모리스 가렐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서는 항상 '돈이 너무 많은 건 좋지 않다.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제 인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없었다면 영화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가렐 감독은 여전히 35미리 흑백영화를 고집한다. "디지털시대에 맞춰 변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평생 작업해온 방법을 이제 와서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에는 이제 흑백 필름을 현상해 줄 수 있는 현상소가 없어서 일본에 가서 현상해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프랑스의 경우는 아직도 몇몇 감독들이 필름으로 작업해서 전문 현상소가 남아있습니다. 프랑스에 더 이상 현상해주는 곳이 없다고 하면 그만 찍죠 뭐."

필립 가렐 감독의 흑백영화 3편을 영상설치로 재구성한 '필립 가렐-찬란한 절망'전은 2016년 2월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필립 가렐 회고전'에서는 47년 만에 발견된 가렐의 영화 '혁명의 순간 Actua 1', '비밀의 아이',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등 디지털로 복원된 필립 가렐의 주요 작품 16편이 상영된다.(서울=포커스뉴스) 필립 가렐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렐과 친구들, 영화를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참석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허란 기자 영화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L'ombre des femmes)'의 한 장면.<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서울=포커스뉴스) 필립 가렐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렐과 친구들, 영화를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참석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허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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