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 숲의 어두운 이면
(서울=포커스뉴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세계 경제수도 뉴욕시가 늘어나는 노숙자 때문에 쩔쩔매고 있다.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을 얕잡아본다”는 여론의 지적을 받아온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자신의 손발이 되어 노숙자 문제 해결에 매달려야 할 간부들이 떠나고 있어 난감해 하고 있다.
드 블라시오 시장은 지난 15일 노숙자 문제를 총괄해온 뉴욕시 노숙자서비스국(DHS)의 길버트 테일러 국장의 사임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DHS를 비롯한 사회서비스 부서들을 관장하는 릴리엄 배이로스-파올리 부시장이 사임한 바 있다. 노숙자 문제를 풀어야 할 고위 간부들이 속속 시장 곁을 떠나는 상황은 뉴욕시의 노숙자 문제가 얼마나 난제인지 짐작케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4년 1월 드 블라시오 시장 취임 이래 DHS가 관리하는 노숙자 쉼터에 보호된 사람의 수는 5만3000명에서 5만7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한때 5만9068명까지 치솟은 적도 있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뉴욕시 노숙자를 7만5000명으로 잡고 있다. 비영리기관인 ‘노숙자를 위한 연합’은 근년 들어 뉴욕시의 노숙자 수준이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고라고 말한다.
미국언론에 따르면 드 블라시오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변호하려는 듯 “그것(노숙자)은 뉴욕에서 30년, 40년 묵은 문제”라면서 “이것은 긴 싸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갈수록 많은 우리 시 노숙자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지 약물남용이나 정신건강 상의 문제로 인한 노숙자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드 블라시오 시장은 ‘뉴욕시 노숙자를 주택에 입주시키는 것’을 뉴욕시 시정의 우선과제로 삼는다. 하지만 주택 월세가 세계최고 수준인 뉴욕시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거를 마련해 주기란 근본적으로 버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 빈부격차 실태 발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OECD 34개국 가운데 빈부격차 1위인 미국의 경우 부유층 상위 10% 평균 소득이 빈곤층 하위 10% 평균 소득의 19배에 달했다. 뉴욕시는 미국 내 도시들 가운데 빈부격차가 클 뿐만 아니라 집세가 가장 비싼 곳에 속한다. 그러니 노숙자에게 영구적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뉴욕시의 장기 계획은 아파트를 건설해 노숙자를 입주시키는 것이다. 단기적 대책은 노숙자 쉼터의 침대 수를 늘리고, 청소년회관의 운영시간을 연장하며 구빈(救貧)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드 블라시오는 노숙자는 뉴욕시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 여타 도시들도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면서 동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는 뉴욕보다 노숙자 비율이 더 높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평소 드 블라시오의 복지정책을 비판해온 시민단체들은 주택·도시개발부의 최신 자료를 들이대며 “미국 전체적으로 노숙자는 2007년 64만7258명에서 2015년 56만4708명으로 줄었는데 유독 뉴욕시만 거꾸로 가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시장을 질타했다.
이들 단체는 뉴욕의 노숙자 문제는 보기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공식 통계로는 매일 3000~4000명이 공원, 기차역, 지하철역 등지에서 밤을 새우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들과 별도로 임시 처소와 노숙자 쉼터에서 자는 사람이 수만 명 있다. 이들 가운데는 노숙자의 자녀인 어린이도 섞여 있다. 빌 브래튼 뉴욕시경국장은 지난달 노숙자를 둘러싼 상황이 “지난 2년에 걸쳐 폭발했다”며 드 블라시오 시장이 처음부터 노숙자 규모를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드 블라시오는 요즘 들어 노숙자 문제와 관련해 정신이 번쩍 든 모습이다. 그는 최근 기자들에게 뉴욕시 노숙자 실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낮에 쉼터에 머무는 사람 중에서 여러분이 결코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하러 가기 때문이다. 낮에 쉼터에 머무는 사람 중에서 여러분이 결코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쉼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간의 전형적인 업무 처리 관행은 그들에게 낮 동안 자리를 비워주고 밤에 다시 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그들이 거리에 나앉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뉴욕시가 노숙자에게 제공하는 쉼터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다. 스콧 스트링거 뉴욕시 감사원장은 최근 배포한 감사 보고서에서 “우리 시의 노숙자 아동 2만3000여 명이 간밤에 악몽 같은 환경에서 잤다. 건물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깨진 유리창으로 찬바람이 밀려드는가 하면 해충(害蟲)이 득실거리는 수용소가 숱했다”고 DHS를 맹공격했다. 선출직 공무원으로 뉴욕시의 서비스 체계를 감독하는 스트링거는 노숙자 쉼터를 이용하는 1만2500가구를 돌보는 공무원이 14명에 불과하다고 개탄했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이 설립한 뉴욕 빈민 구호 자선단체인 로빈후드재단에 따르면 인구 840만 명의 뉴욕에는 빈곤한 시민이 180만 명 있다. 뉴욕시민 6명 중 1명은 무료 급식소의 도움에 의존한다.뉴욕시 브루클린 구(區)의 공원에서 잠자는 노숙자.(Photo by Spencer Platt/Getty Images)2015.12.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뉴욕시 워싱턴하이츠 지구의 아파트.(Photo by Rob Kim/Getty Images)2015.12.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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