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민주화 출발, ‘미얀마의 봄’…새 의회 오는 1일 개원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1-29 08: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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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여당 돼 국정 주도

대통령 취임 막힌 수치, 군부 달래가며 수렴청정 예정

(서울=포커스뉴스)미얀마의 험난한 민주화 여정인 ‘미얀마의 봄’이 시작됐다.

아웅산 수치 여사(사진)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주도할 미얀마 의회가 다음 달 1일 개원한다. 수치 여사는 지난해 선거 혁명을 통해 민주화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지만 미얀마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면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군부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NLD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657석의 상·하원 의석 가운데 약 59%에 해당하는 389석을 차지해 새 의회에서 여당이 된다. 수치 여사가 이끌었던 민주 정파는 1990년 총선에서도 압승했지만 당시 미얀마 군부는 선거결과를 뒤엎고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했으며 그녀를 따르던 지지자 수천 명을 체포하고 그 중 많은 사람을 모질게 고문했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뒤 49년간 ‘혁명위원회’ 를 통해 철권 통치해 오다 2011년 꼭두각시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내세워 형식상 민정이양을 했다. 이후 USDP가 집권여당으로 기능해 오다가 지난해 선거에서 패해 NLD에 권력을 내주게 됐다.

의회 개원이 임박함에 따라 수치 여사는 28일 상하원 의장단을 내정했으며, 오는 3월 말 테인 세인 대통령의 임기 만료 후 자신을 대신해 국정을 이끌 차기 대통령 후보를 물색 중이다. 수치 여사는 일찍이 자신은 “대통령 위에” 있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헌법을 바꿔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렴청정하겠다는 것이다. 수치 여사는 외국인(옥스퍼드대학 역사학자 고(故) 마이클 아리스)과 결혼했기 때문에 미얀마 헌법 규정에 막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수치 여사는 평화적인 정권인수를 위해 테인 세인 대통령은 물론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2차례 만나는 등 물밑 정지작업을 해 왔다.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은 지난 25일 수치 여사를 만난 뒤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는 선거후 (권력) 이행 기간 동안 어떻게 안정을 달성할 것인지, 정부 구성, (반군들을 상대로 한) 전국적인 휴전협정 체결 이후 장차 어떻게 진정한 평화를 달성할지를 놓고 논의했다”고 적었다.

수치 여사와 군부 간의 순조로운 관계는 정권 이양의 성공에 필수적이다. 군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신정부에 대해서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의회 전체의석 가운데 25%가 자동적으로 군부의 대리인인 USDP에게 가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으며, 국방·내무장관 등 핵심 권력 직위를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여전히 군부가 통제한다.

수치 여사에게 현재 가장 화급한 정치적 과제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NLD 간부들은 수치 여사 말을 잘 들을 사람을 대통령에 앉히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군부 쪽에서는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전직 군부 실력자들과 수치 여사 사이에서 불신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양곤에서 활동하는 정치 분석가 시투 아웅 미인트는 “더 큰 문제는 군부가 수치 여사를 어떻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느냐,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역할과 비교하여 군부가 과연 어떤 종류의 역할을 그녀에게 부과하느냐다”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말하자면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 구상에 대한 수치 여사 본인과 군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군 출신으로 USDP 의원으로 활동하다 물러나는 흘라 슈웨는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 구상이 “전적으로 헌법에 배치된다”며 “군부뿐만 아니라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가 만들어 놓은 헌법에 따르면 군부는 자신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면 비상 조처를 발동할 수 있다. 예컨대 군 총사령관은 군이 볼 때 비상의 경우 권력을 인수할 수 있으며, 군은 민정 체제에서도 보안 관련 조직과 제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기형적인 통치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수치 여사의 대통령 취임을 금지한 헌법을 NLD가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부는 헌법에 손을 대는 것은 너무 이르며 군은 이른바 “기율 있는 민주주의”를 선호함을 강하게 시사해왔다. 군이 말하는 “기율 있는 민주주의”는 핵심 장관 자리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여 어떤 신정부에서도 군에 계속적인 권력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NLD가 헌법을 개정하려면 군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헌법 개정에는 의회 전체 의석의 75%를 초과하는 의석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얀마 의회 의석의 25%는 자동적으로 군의 대리인인 USDP에 배정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를 아는 NLD로서는 군에 도전하기보다 군과 잘 지내며 군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25일 있었던 수치 여사와 군 총사령관 간 회담에 배석했던 NLD 간부 윈 흐테인은 NLD와 군이 그간 다섯 차례 정치·정책을 주제로 공동 워크숍을 열었다며 “처음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좀체 말도 걸지 않더니만 이후 여러 차례 워크숍이 이어지자 점차 우리 의견을 묻고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고 WSJ에 말했다. 그는 이어 “NLD 입장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까지 군을 최대한 존중했으며 이에 따라 군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90년 수치 여사의 압승으로 끝난 총선 결과를 뒤엎고 민주 진영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미얀마 군부는 2015년에는 선거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군이 민주적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랜 국제적 고립으로 미얀마 경제가 피폐해진 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수치 여사의 민주화 투쟁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정권 이양에 동의한 미얀마 군부는 수치 여사가 이끄는 신정부 세력이 과거 엄청난 인권유린을 저지른 군부에 앙갚음을 하려 들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미묘한 상황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수치 여사의 고도의 정치력이다. 앞으로 예견되는 정치적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수치 여사는 자신의 국제적 지명도, 그리고 미얀마 독립운동의 지도자 아웅산의 딸이라는 자신의 국내적 명성을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4분세기를 황야에서 보낸 아웅산 수치는 분명 영광스럽게 미얀마 정계에 복귀했다. 선거에서 얻은 득표수에 상관없이 수치 여사 진영은 오랜 박해자였던 미얀마 장군들에게 멋진 한 방을 먹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장군들 없이 수치 여사가 미얀마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미얀마 정치의 구조적 한계다.(Photo by Stefan Postles/Getty Images)2016.01.29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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