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폭락 인한 재정절벽으로 ‘패닉’에 빠진 크렘린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2-05 11: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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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푸틴, 소련 창설자 레닌까지 비난

아직 침착한 국민까지 패닉에 빠지면 중대사태

(서울=포커스뉴스) 유가와 루블화가 동반 폭락하면서 원유 판매에 재정수입의 40%를 의존하는 러시아에서 서민들의 생활수준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가치를 부추기는 데 보유 외환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잘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러시아 국민도 중앙은행의 이런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국민은 근래의 경제적 어려움에 비교적 의연하게 대처해 오고 있다. 국영 여론조사 기관인 VTsIOM의 지난해 연말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가정의 39%가 의식주를 충분히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는 1년 전 22%에서 17%포인트 늘어난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은 일종의 금욕주의를 발휘해 잘 버티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패닉의 기운이 감지되는 곳이 분명 있다. 그것은 다음 단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으로 보이는 크렘린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러시아 안팎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해 크렘린의 러시아 지도부가 얼마나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소련 창설자 블라디미르 레닌을 공개 비판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푸틴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에서 친정부 활동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 마지막 황제 차르와 그 가족을 잔혹하게 처형했고 △ 성직자 수천 명을 죽였으며 △민족적 구분선에 따라 인위적으로 국경을 그어 러시아에 시한폭탄을 설치해 놓았다고 대선배 레닌의 실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들을 비판해 봤자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과 관련한 푸틴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내정(內政)과 모험성 외교(外交) 둘 다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갈수록 많이 받고 있다.

패닉과 정부 기능부전의 조짐은 완연하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2015년에 이어 올해 예산을 10% 삭감하자고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1998~1999년 그랬던 것과 같이 재정파탄과 디폴트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재정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러시아 재정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2016년 예산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 의료 서비스, 사회적 지출 등이 대폭 삭감된 상태다. 여기서 추가로 예산을 줄인다면 러시아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세입(歲入)을 늘리기 위해 크렘린은 로스네프트(석유), 스베르방크(은행), 아에로플로트(항공)를 포함한 대형 국유기업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유기업 정부지분을 불황기에는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말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처한 현 재정상황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지분 매각이 일어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이들 국유기업을 관장하는 장관들은 국유기업 매각과 관련해 푸틴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푸틴은 이들 기업의 지분을 팔더라도 그것은 러시아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면서 해외 매각에 선을 그었다. 만약 푸틴이 이런 자세를 고수한다면 매수 후보군이 좁혀져 지분 매각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푸틴은 또 정부지분의 떨이세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러시아 정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현금유입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 △지분매각 과정과 관련한 정부 내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노출했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푸틴과 크렘린의 지도자들이 별다른 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하자 푸틴 측근까지 경고를 발하고 나섰다. 푸틴의 경제개발 담당 각료를 지냈고 지금은 스베르방크 책임자인 게르만 그레프는 주요한 구조개혁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계속해서 국제적 경쟁자들에게 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엘리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 문제가 정치 문제로 번지는 상황이다. 세르게이 나리쉬코프 러시아 국회의장은 2016년 9월 총선을 치르게 될 국회의원들에게 올 가을의 선거가 “사회적 폭발에 기폭장치”로 기능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것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대중의 불만에 편승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지도층이 느끼는 패닉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러시아 국민은 지도자들보다 더 침착하게 행동해 왔다. 하지만 엘리트의 증대되는 근심은 국내문제에서 국제문제로 옮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외국에 대한 차관제공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중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푸틴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그만 물러나라고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태도는 푸틴이 지금까지 시리아 정권을 굳건하게 지지한다고 공언해 온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최근 외교행보 가운데 단연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월 빅토리아 눌란드 미 국부무 유럽담당 차관보와 크렘린의 홍보 책임자 블라디슬라브 수르코프가 우크라이나 문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난상토론한 사실이다. 수르코프의 참여는 그가 러시아 문제 해결과 관련해 전략적인 후퇴를 최종 지휘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장관은 모두 ‘민스크 협정’이 전면 이행된다면 앞으로 몇 달 안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풀 수 있다고 암시해 왔다. 지난해 2월 12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러시아·독일·프랑스·우크라이나 4자 정상회의에서 합의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및 돈바스 지역(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리주의자 대표 등에 의해 서명된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지역에서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을 중단하고 전투에 투입된 외국 군대(러시아 군대)를 철수함과 동시에 이 지역에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추진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서방의 제재만 풀려도 러시아 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둔 러시아·서방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만약 이 협상에서 아무런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러시아 경제는 완전히 거덜 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푸틴은 패닉 확산을 저지하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돼 국민마저 패닉에 빠진다면 그것은 푸틴에게 악몽이 될 것이다.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Photo by Mikhail Klimentiev/Pressphotos/Getty Images)2016.02.0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우크라이나 심페로폴의 스베르방크 지점 게시판을 행인이 들여다보고 있다.(Photo by Sean Gallup/Getty Images)2016.02.0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시베리아의 유전에서 작업중인 러시아 노동자들.(Photo by Oleg Nikishin/Getty Images)2016.02.05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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