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 매그니슨씨…33년만에 친가족과 '극적 상봉'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3-24 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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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스웨덴으로 입양된 대니얼 세진 매그니슨씨

업무차 한국 찾아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 "친부모 찾아달라"

25일 출국 앞두고 하루 전에 가족과 33년 만에 상봉
△ 다시 찾은 가족

(서울=포커스뉴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아버지)

"전 괜찮아요. 가족을 만난다는 건 놀랍고 행복한 일이에요."(입양아)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누나)

가난으로 갈라졌던 가족은 30여년 동안 가슴 속에만 담아뒀던 말들을 쏟아냈다. 33년이란 세월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지만 핏줄은 이마저 뛰어 넘었다.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서는 특별한 가족의 만남이 이뤄졌다.

나란히 앉은 일가족 4명은 서로의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한동안 놓지 않았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시끌벅적한 경찰서지만 이날 만큼은 훈훈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경찰서를 감격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은 주인공은 1983년 한국을 떠나 스웨덴으로 입양된 대니얼 세진 매그니슨(Daniel sei jin Magnusson·40·한국명 김세진)씨 가족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매그니슨씨는 만남의 장소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에 일찌감치 나타나 가족들을 기다렸다.

뜻밖에 차분한 모습이었다.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게 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담담해 보였다.

상봉을 축하한다는 말에 그는 "지금으로선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막상 가족의 모습이 보이자 매그니슨씨는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바위처럼 단단했던 그였지만 어느새 무장해제됐다.

아버지와 누나들 앞에서 그는 다시 일곱 살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족과 마주 앉은 매그니슨씨는 "친가족을 만난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이어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하다"고 말했다.

개구쟁이였던 누나들의 모습을, 작은 누나의 짧았던 머리칼을 그는 이날 기억해냈다.


가족들은 매그니슨씨가 잘 자라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가난 때문에 먼 이국땅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김용환(74)씨는 "당시 아이들 셋에 노모까지 부양해야 했는데 직장이 없었다"며 "세진이에게 못할 짓을 했다. 하지만 세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당시 어쩔 수 없이 입양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아들의 손을 붙잡은 김용환씨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작은 누나 김연정(42)씨는 보는 순간 동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정씨는 "눈이며 코며 얼굴형까지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신기해 했다.

이어 "같이 살 때 제일 많이 싸운 게 나와 동생이었다. 그때는 밉기도 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큰 누나 김윤정(44)씨는 "어릴 때 잘해주지 못했다. 항상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오늘 어릴 때를 잘 기억 못한다고 하니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매그니슨씨가 한국을 떠난 것은 7살 때였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가 스웨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작은 몸을 실어야했다.

아이는 이 길고 고된 길이 가족과 생이별하고 새 부모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쓸쓸했던 비행길'. 매그니슨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매그니슨씨는 "스웨덴에 있는 양부모들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또 "오늘 만남을 가장 기뻐한 것도 스웨덴에 있는 양부모"라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명씩 있는데 이들도 역시 한국인 해외입양아"라며 양부모를 따뜻한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매그니슨씨가 언젠가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것도 그의 스웨덴 양부모였다.

매그니슨씨는 현재 세계적인 전기기업이자 유럽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SIEMEMS)의 스웨덴지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양부모님이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오늘 만남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서로의 사진을 보고, 궁금한 것은 묻고, 손을 잡고 서로를 쓰다듬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33년의 세월이 만든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날의 감격스러운 상봉은 2주일전 업무차 한국을 들른 매그니슨씨가 지난 16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매그니슨씨 요청에 남대문경찰서 민원실 직원들은 그 길로 친가족 추적에 나섰다.

매그니슨씨가 가져온재적등본, 친권포기각서, 입양 당시 만든 여권 등 서류를 조회해 친부 김용환씨가 경북 고령군에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관할 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해 마침내 상봉을 성사시켰다.

이현호(53) 남대문경찰서 민원실장은 "30년 넘게 떨어져 지낸 가족들이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 했겠냐"며 "매그니슨씨가 25일 출국한다고 해서 걱정도 됐다. 행여나 상봉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얼마나 아쉬웠겠냐"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업무지만 당사자에게는 선물이다. 조금은 뿌듯하다"는 소회를 전했다.

매그니슨씨도 도와준 경찰들에게 "대단한 일을 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세진씨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의 영문 이름은 대니얼 '세진' 매그니슨이다.

어릴 적 한국 이름을 스웨덴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7년 남짓 살았던 고국이지만 그에게 한국은 크게 각인돼 있었다.

다만 매그니슨씨는 한국말을 완전히 잊어버려 이날 상봉에는 이휘소 성도교회 장로가 통역을 도왔다.

그는 "스웨덴에 돌아가서 한국어를 공부할 생각"이라고 했다. 가족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는 "아버지가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게 빠를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만남의 기쁨은 짧기만 했다. 매그니슨씨는 25일 스웨덴 출국을 앞두고 있다.

하루 전 극적인 상봉을 마친 그는 "한국에서 쓴다는 모바일 메신저를 휴대전화에 설치했다"며 앞으로는 그간 나누지 못한 가족의 정을 쌓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24일 오전 7살 나이에 스웨덴으로 입양을 갔던 매그니슨씨 가족이 상봉했다. 왼쪽부터 큰누나 김윤정씨, 아버지 김용환씨, 매그니슨씨, 작은누나 김연정씨. 2016.03.24 양지웅 기자 33년만에 만난 매그니슨씨 가족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2016.03.24 양지웅 기자 경찰은 매그니슨씨가 가져온 재적등본, 친권포기각서, 입양 당시 만든 여권 등 서류를 조회해 마침내 상봉을 성사시켰다. 2016.03.24 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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