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 없다"→조서 제시→"기억 안나" '반복'
![]() |
△ 조남풍 향군 회장, 영장실질심사 출석 |
(서울=포커스뉴스)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업무방해,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남풍(78) 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의 3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박모(70) 향군상조회 강남지사장의 증언이 그러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김도형) 심리로 4일 오후 2시 열린 조 회장에 대한 3차 공판에는 박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박씨는 조 전 회장이 향군 회장으로 당선된 후 그의 집을 찾아가 5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돈을 건넨 목적에 대해서는 당초 검찰이 기소한 ‘향군 상조회 대표직 청탁’이 아닌 ‘안보 중심의 활동을 위한 향군 운영비’라고 진술했다.
거듭되는 검찰 질문에도 박씨는 “그 자리에서는 안보활동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을 뿐 상조회 대표 자리에 가고 싶다거나 (조 전 회장이) 상조회 대표를 약속하는 듯한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조 전 회장 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화를 끝낸 뒤 테이블 위에 5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올려놓고 황급히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박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 전 회장이 수차례 거절하며 두세번 호통까지 쳤지만” 돈을 두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어떤 청탁도 없었다는게 박씨 증언의 취지였다.
증인신문 내내 “조 회장님이”, “회장님이 입이 무거우신 분이라”, “회장님의 성정이” 등 표현을 사용하며 조 전 회장이 청탁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박씨의 말은 증인신문 후반부에 이르자 스스로 올가미가 돼 돌아왔다.
이날 박씨가 말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향군 상조회 대표에 공모한 뒤 최종 후보에서 탈락되자 조 전 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신이 왜 탈락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조 전 회장에게 문자를 보내기 전 향군 관계자에게 “조 전 회장에게 상조회 대표직 때문에 5000만원을 줬다”면서 “이 돈을 돌려받아야겠는데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박씨의 문자를 받은 조 전 회장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 자리에서 조 전 회장은 “심사위원의 점수가 낮아 탈락하게 됐다”면서 5000만원을 돌려줬다.
이를 두고 검찰은 “조 전 회장이 청탁을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니라면 왜 탈락에 대한 문자를 받고 난 다음에 돈을 돌려준 것이냐”면서 “그 전에라도 돌려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돌려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재판부도 역시 증인을 향해 “증인의 말대로 안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사무실을 이용해도 됐을텐데 굳이 왜 집으로 찾아갔냐”면서 “혹시 돈을 들고갔기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박씨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증인 말고도 조 전 회장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 전 회장이 보안사령관 출신이라 그런 문제에 엄격하기 때문에 아무나 들락날락하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이후 재판부의 의구심을 불러온 것은 박씨가 조 전 회장의 집 주소와 휴대전화를 알았는지 여부였다.
박씨는 “강남구 재향군인회 회장을 하다보면 장성 리스트를 갖게 되는데 거기에 조 전 회장의 집주소와 집 전화번호가 나와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박씨는 상조회 대표직에서 탈락한 후 조 전 회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재판부가 휴대전화 번호를 알게된 경위를 묻자 박씨는 “조 전 회장의 선거홍보물에 개인 휴대전화번호가 나와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박씨의 이러한 진술은 거짓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박씨가 진술한대로 장성 리스트가 담긴 수첩에 조 전 회장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는 나와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번호는 달랐다.
기자가 입수한 조 전 회장 선거 당시 홍보물 어디에도 휴대전화번호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씨는 증인신문 이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역시 "선거 당시 사용하는 홍보물에 휴대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향군 소속 회원들도 “홍보물에 휴대전화번호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조 전 회장과 박씨가 이미 그 전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씨는 이날 증인신문 과정 내내 조 전 회장을 보호하려는 듯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가 검찰이 검찰조사 당시 조서를 제시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는 식이었다.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이날 법정에 선 이들은 그 어느 전쟁터에서보다 끈끈한 전우애로 뭉친 듯해 보였다.
한편 조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18일 구속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같은해 11월 13일과 16일 두 차례 조 전 회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조 전 회장은 소환 당시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재향군인회 일부 이사, 노조 등으로 이뤄진 ‘향군 정상화 모임’으로부터 선거법 위반과 배임, 배임수재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들은 조 전 회장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으로 향군에 79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업체로부터 선거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당선 이후 산하기관 인사에 관여하는 등 매관매직을 통해 금품을 챙겼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지난해 4월에 있었던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당시 조 전 회장이 대의원 200여명에게 1인당 500만원씩 건넨 혐의 등을 포착했다.
검찰은 조 전 회장이 조남기(89)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의 조카 조모(70)씨로부터 “‘중국제대군인회’와 ‘한국재향군인회’가 연계된 관광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원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도 역시 포착해 기소했다.
앞서 조 전 회장은 지난 1월 21일 고령과 건강상 문제를 이유로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고 구속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는 아니라며 보석을 기각했다.지난해 11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금권선거와 불법 금품수수 등 의혹을 받고 있는 조남풍 재향군인회장이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박씨가 조남풍 전 회장의 휴대전화번호를 봤다는 선거홍보물이다. 홍보물 어디에도 조 전 회장의 휴대전화번호는 찾을 수 없었다. <사진제공=독자>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