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전 여성 장관 17명 '침묵하지 않겠다' 공동성명 발표
(서울=포커스뉴스) 지난해 프랑스 여성 기자들의 정관계 성추문 폭로에 이어 프랑스 전직 여성 장관들이 또 한 번 "더 이상 성희롱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들은 일련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남성 중심적 프랑스 정치계의 변화 계기가 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섹스 스캔들에 면역된 남성 중심 정치계…폭로의 시작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드니 보팽 프랑스 하원 부의장이 지난 15년 간 같은 정당인 유럽생태녹색당(EELV) 여성 동료 정치인 네 명의 신체를 더듬고 성적으로 괴롭혀왔다는 혐의로 사임했다. 보팽 전 하원 부의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거라고 발표했다.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한 익명의 프랑스 여성 라디오 기자는 "처음 사팽이 한 짓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전부일까?'라고 생각했다. 더 나쁜 일도 일어났었고 지금도 일어난다.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젊은 여성 언론인 세대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녹색당 관계자 또한 "보팽의 행동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 10일 미셸 샤팽 프랑스 재무장관도 작년 1월 다보스 국제 포럼에서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기자는 땅에 떨어진 펜을 줍기위해 몸을 굽혔을 때 사팽 장관이 속옷의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고 밝혔다.
사팽 장관은 AFP통신에 성명을 보내 "성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의도는 없었다"며 "하지만 그녀가 놀랐기에 내 말과 행동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하며 이에 사과한다"고 답했다.
프랑스 사회에 정치계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가장 큰 계기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사건이다.
지난 2011년 5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 뉴욕에서 호텔 여직원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증거 불충분으로 공소 취하 판결을 받았지만 총재직을 반납하고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에서도 밀려나게 됐다.
이후로도 계속된 성추문에 대한 분노는 이번 보팽 사건에서 점화됐으며 '성희롱에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서명 운동에 현재 1만2000명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
◆2015년 프랑스 여기자들 "손 대지마!" 폭로
1년 전 5월4일 프랑스 여기자 40명은 중도 좌파 성향의 신문 리베라시옹 1면에 '손 대지마(bas les pattes)!'라는 제목의 성명글을 게재해 프랑스 남성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성차별적 언행을 폭로한 바 있다.
그들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사건이 새 시대의 시작을 열 거라 기대했다"며 "구식 정치와 태도를 상징하는 마초적 관습들이 멸종되길 바랐지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성명에는 남성 정치인과 정부 공무원에 의해 행해진 수십 개의 성희롱과 협박 예시들이 열거돼있다.
성명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나는 가슴 큰 기자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국회의원들은 공장 옷을 입은 여기자에게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성적 농담을 던지거나 취재차 찾아온 여기자에게 "매춘부처럼 손님을 찾고있나?"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이외에도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거나 잠든 사진을 찍는 등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성추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 성명은 "여기자들에게는 '한 잔 하며 회의하자'나 '토요일 밤 저녁식사하자'는 제안의 대가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메시지가 쏟아진다"며 "문제는 길에서, 회사에서,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런 성희롱이 정책을 만드는 입법자들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이며 남성우월주의가 정치권을 지배하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한 여성 라디오 기자는 "1970년대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최초 여성 편집장이었던 프랑수아즈 지루는 여기자들이 남성 정치인들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데 훨씬 유리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며 최근까지 프랑스 일부 기자들이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섹스 어필을 사용한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2016년 전직 여성 장관들 "더 이상 침묵은 없다"
지난해 여기자들의 폭로 이후에도 정관계 성추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프랑스에는 또 한 번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전 프랑스 재무장관을 역임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장관 등 전직 여성 장관 17명은 시사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쉬'에 모든 정치적 범위에서 남성 동료의 공격적인 성적행동에 대해 "다시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공동성명을 게재했다.
성명에는 전 여성 장관들이 실제 겪은 성추행 사례들이 실려있다. 펠르랭 전 장관은 지난 2014년 2월 문화장관에 임명될 당시 한 남성 기자로부터 "당신이 아름다워서 장관직을 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당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정치인으로 선출된 여성은 선임 남성 동료에게 쉽게 먹잇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디펜던트와의 대담에서 한 익명의 여성 보좌관은 "정치계에는 많은 여성들이 깨뜨리지 않으려는 침묵의 법이 있다"며 "만약 누군가 소란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도움되지 않으며 정당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은 "여성은 성희롱의 대상이 되지 않고도 집 밖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주장이나 선언을 다시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희롱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고 경찰서에 성희롱 담당 불만처리 담당을 배치하는 등 정책적 요구도 포함하고 있다.지난 2011년 8월23일(현지시간)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뉴욕 자택 앞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여있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지난해 5월24일(현지시간)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장관이 68회 칸영화제에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펠르랭 전 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히며 프랑스 정관계 성추행 문화를 규탄했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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