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냥' 안성기, 5살에 시작해 59년째…"여전히 새롭고 목마르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7-04 0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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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사냥'에서 양순(한예리 분)을 엽사 무리에게서 지키는 기성 역 맡아 액션 도전

"시니어 층에게도 기회의 폭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

(서울=포커스뉴스) 안성기는 1952년 태어났다. 연기를 시작한 것은 5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년)를 통해서다. 충무로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두 단어 중 무게감을 고르라면 전자인 '살아있는'에 두어야겠다. 여전히 현역인 안성기는 현장, 작품, 캐릭터를 말하며 눈빛이 반짝였다.

'사냥'은 안성기에게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조진웅 등 젊은 배우들도 힘든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그가 맡은 기성은 건장한 성인 남성 6명으로부터 양순(한예리 분)을 지켜내야 했다. 산에서 벌어지는 16시간 동안의 추격전을 담은 작품을 위해 안성기는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영화를 위해 '근육을 키워야 겠다'는 것은 없었어요. 사냥' 속에서 보신 게 제 기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다른 작품에서는 제 몸이 노출될 일이 없잖아요. 예전 '실미도'에서 웃통 벗고 뛰는 모습을 제외하면요. 기성이 노쇠해 보이거나, 약하게 보이면 재미가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첫 등장부터 '이거 봐라' 하는 느낌을 줘야 할 것 같았어요."

큰 액션을 소화했지만,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성이 가진 상처였다. '사냥' 속에서 기성을 향해 "람보 영감"이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그냥 람보이기만 하면 안 됐다. "고뇌하는 람보죠.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은 인물이잖아요. 근본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잊지 말아야겠다. 거기에 중점을 뒀어요."


기성의 외모를 만들어가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안성기는 "시대물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남자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발을 쓰고 나온 적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만큼 기성은 외모도 새로운 캐릭터죠. 추격전을 해 나가면서 초반에 하나로 틀어 올렸던 머리가 헝클어지잖아요. 나중에는 다 풀려버리고요.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었죠"라고 말한다.

함께하는 후배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안성기의 체력은 채찍질이었다. 모든 스태프가 안성기에게는 촬영 시작 시간을 한 시간씩 늦게 알려주기도 했다. 8시부터 촬영이 시작되면 7시부터 현장에서 준비하고 있는 안성기를 배려해서다. "겉으로는 표현 안 했지만, 속으로는 섭섭도 했을 거야. 제가 쉬어야 그 친구들도 좀 쉴 텐데, 원망의 눈빛이 보이더라고.(웃음)"

'사냥' 속 안성기의 모습은 '그랜토리노'(2008년)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젊은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 숭고한 태도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전달한다. 안성기는 "외국에는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도 기획이 되잖아요. 일부이긴 하지만, 참 보기 좋고, 부럽고, 그랬거든요. '사냥' 이후, 우리나라에도 좀 그런 기획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죠"라고 말한다.


안성기는 "나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제 뒤를 줄줄이 이어가는 후배들의 몫이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인다. 아버지의 지인 김기영 감독의 손에 이끌려 충무로에 들어온 5살 때 이후, 계속해서 길을 헤쳐 나온 안성기의 익숙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좋아졌죠. 한국 전쟁 이후, 70년대 후반은 정말 최악 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여러 가지 제약과 검열도 많았고, 주로 사랑·반공·계몽 영화만 만들었죠. 그러니 사람들도 더욱 영화인들은 존중하지 않았고요. 영화인들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되길 바랐어요. 힘들었지만, 그래서 저는 사랑 영화가 아닌 사회성·역사성 있는 작품을 택했고요.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도 영화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영화인들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요. 저도 나름 거기에 나름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 들죠.“

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그리고 대중의 기억 속에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로 남아있다. 하지만 안성기는 자신의 연기를 보며 아직도 아쉽기도, 실망스럽기도, 후회가 남을 때도 있다. "'생활의 달인'처럼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그 일의 달인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지 못하잖아요. 새로운 세계, 인물, 나이. 늘 새롭죠. 나이 들어서 잘한다는 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뻔해 보일까봐 더 힘들지. 어려워요."


영화인으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걸어온 길이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뒤따르죠. 지금까지 해온 것 중 잘한 것도 있고, 못 한 것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건 '정말 잘해야 겠구나'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실패 덕분에 휘청거리지는 않겠지만, 절대적으로 남은 출전 횟수가 적은 상황에서 시간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안성기는 앞으로의 시간에 '편함'을 앞세울 생각이 없다. '편함, 여유'라는 단어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사냥'도 그런 것 중 하나죠. 액션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고요. 힘든 경험은 아니라서 '도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긴 그렇지만요.(웃음) 일단 내년에는 '매미소리'로 만나겠네요. 기성과 비슷한 세대의 인물이에요. 표현은 전혀 달라요. 요즘에는 '매미소리'에서 나올 흥타령이 몸에 녹아들 수 있게 계속 흥얼거리고 있습니다."영화 '사냥'에서 기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안성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영화 '사냥'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영화 '사냥'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영화 '사냥'에서 기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안성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영화 '사냥'에서 기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안성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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