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관객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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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포토] 영화 |
(서울=포커스뉴스) 아직도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이영애의 온도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던 유지태의 온도는 사랑에 관한 영화를 떠올릴 때, 항상 중심에 있다. 그 모습이 담긴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를 연출한 감독이 허진호다.
허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봄날은 간다'(2001년) 등의 작품으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스크린에 담아낸 감독이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그 작품의 흐름과 궤를 달리한다. 영화 속에는 한 여인의 일대기가 담긴다. 시대배경은 일제 강점기다. 궁금했다. 그가 꼬박 4년여의 세월 동안 '덕혜옹주'에 빠져 있었던 이유가 말이다.
허 감독은 "덕혜옹주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명확해요. 다큐멘터리 '덕혜옹주의 일대기'에서 37년 만에 한국 공항에 내리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라며 이유를 설명한다. "유모로 있던 상궁이 나이를 먹어서도 '아기씨'라며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는데, 거기에서 오는 울림이 있더라고요. 세월이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덕혜옹주의 삶을 영화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작비, 여자가 주인공, 역사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수동적인 덕혜옹주의 모습 등이 이유였다. 허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였다. 그 책은 독자의 큰 호응을 얻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덕혜옹주가 가진 힘을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저도 사람들이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를 고민해 봤어요. 덕혜옹주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죠. 그분의 삶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시대를 공감하는 한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아픔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덕혜옹주'는 허 감독에게 남은 진한 인상을 고스란히 담는다. 고종황제가 승하한 후,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던 어린 덕혜옹주(김소현 분)를 향해 상궁들은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이는 3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손예진 분)를 향해 올리는 나이든 상궁들의 큰절로 겹쳐진다.
손예진은 '세월이 있는 이야기'를 가능케 한 장본인이었다. 일본에서 성인이 된 덕혜옹주부터 노인이 돼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감정의 변화 역시 계속된다. 허 감독은 "손예진은 참 힘이 좋은 여배우 같아요. 원래 남자배우에게 느껴지는 부분인데, 손예진과 작업할 때 그렇게 느꼈어요"라고 말한다.
"손예진이 딸 정혜를 곁에 두고 정신을 놓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정혜가 엄마를 보면서 뒷걸음질을 치는데 그게 연기가 아니고 실제로 그랬어요. 그 장면을 굉장히 추운 날, 거의 24시간을 찍었어요. 그런데 손예진이 계속 땅바닥에 누워있더라고요. 보통은 촬영 중간에 의자에 앉아서 몸을 녹이며 쉬잖아요. 그런데 차디찬 바닥에 가만히 있더라고요. 덕혜를 계속 떠올린 것 같아요. 지켜보면서도 좀 섬뜩했죠."
덕혜옹주의 곁에 있는 장한 역시 창조된 인물이다. 그렇다고, 허구의 인물은 아니다. 고종황제가 정해준 덕혜옹주의 정혼인의 이름이 김장한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알려진 이야기는 거의 없다. 다만, 김정한의 형인 김을한이 덕혜옹주를 37년 만에 한국으로 데려온 장본인이긴 하다. 두 인물이 합쳐져 영화 '덕혜옹주' 속 김장한이 됐다.
"사실 김장한과 덕혜옹주를 멜로 버전으로 담은 시나리오도 있어요.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장한이 사적으로 보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박해일이 그 사이를 잘 채워준 것 같아요. 참 좋은 사람이에요. '박선비'라고 불릴 정도로. '덕혜옹주'를 작업하며 굉장히 자주 만났어요. 서로 장한에 대해서 계속 물어보면서 작업한 것 같아요. 시나리오 속에서 장한의 행동을 하나하나 묻고 답하며 합을 찾아갔죠. 발전적인 방향이었던 것 같아요."
'덕혜옹주'의 삶을 미화시켰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답했다. 허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부분인 것 같아요. '덕혜옹주'에는 분명히 극화된 부분이 있죠. 그렇다고 덕혜옹주를 독립군으로 그린다거나 한 건 아니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어떤 가상의 선을 생각했어요. 영화적 정당성이겠죠.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선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겠죠"라고 말한다.
결국은 '덕혜옹주'를 보면서 허 감독 자신이 느낀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이 영화화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관객으로 허 감독이 그리는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건넸다. 허 감독은 도전과 갈증을 동시에 말한다.
"장르 영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전작에서처럼 일상에서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제가 작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라서요. 좀 빨리 빨리 해서 두 개 다 만들어봤으면 좋겠네요.(웃음)"(서울=포커스뉴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8.05 김유근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8.05 김유근 기자 박해일과 손예진이 열연 중인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덕혜옹주' 촬영 현장에서 허진호 감독(왼쪽)과 박해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서울=포커스뉴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덕혜옹주'의 허진호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08.05 김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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